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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허혜인(부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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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발행 제2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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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예전에 이랬겠지? ”“엄마는 그때 나한테 참 뭐든지 잘해줬는데~” 하면서 참을성이 부족한 엄마인 저를 탓하기도 합니다.


내 나이가 불혹을 넘으면서 신체의 변화 중 하나는 눈물이 몹시, 무척 많아졌다는 겁니다. TV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거나, 안타까운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나오면 여지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그중에 최고는 바로 "엄마". 엄. 마. 라는 이 두 음절만 들어도 마음이 짠하고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돕니다.
1974년에 3월에 결혼한 우리 엄마는 가진 것이 없는 아빠를 만나 큰 며느리로 집안의 안 주인으로 친척을 챙기고, 형제자매를 보살피셨습니다. 아들이 최고라던 그 시절에 저를 포함해 딸만 둘을 낳으셔서 집안의 구박도 있었고, 당신도 섭섭함이 있으셨을 겁니다.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늘 자식을 믿고, 지원해주셨습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엄마가 한 번도 저에게 "공부해라."라는 말씀은 절대 안 하셨어요. 대신 시험 보고 나서, 점수 받고 나서 "최선을 다한 거니?" 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무척 세련된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엄마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그 당시에는 무척 생소한 아토피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저를 어디 용하다는 병원을 다 데리고 다니시면서 고치려고 무단히 애쓰셨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참 답답하고 힘드셨을 텐데 지치지 않고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한 엄마께 지금도 고개가 숙여집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가 최고로 훌륭한 점은, 몸이 많이 아프신 아빠를 십 년 넘게 간호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직장생활이다, 결혼생활 육아로 바빠서 엄마를 옆에서 제대로 못 도와드린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게 간호하며 수발을 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 당시 엄마는 수시로 들락거리는 응급실 수발에, 아빠의 치료, 수술 결정 등 큰일들을 너무도 현명하게 해내서 병원 의사들도 엄마의 정성과 노력, 판단에 놀라곤 했습니다. 그것이 아빠가 그나마 마지막에 이 세상에 있으신 시간을 연장해준 결과가 되기도 했고요.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성스러운 배우자였고, 현명하고 똑똑한 엄마였으며, 손녀 사랑이 가득한 최고의 할머니라고요.

<엄마와 함께 보낼 날들을 감사히 여기며~  큰 딸 허혜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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