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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동의 유래

우리 부평은 예부터 인천지역과는 다른 권역으로 발전하여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주부토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장제군으로,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 계양, 길주, 부평 등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부평으로 불렸었다.
1914년 부천군 부내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40년에 와서 처음으로 인천부에 편입된 유서 깊은 고장으로 지난 70년대 이후, 산업발달의 가속화와 대단위 아파트단지 조성으로 인한 급격한 구세팽창으로 2차례에 걸쳐 분구를 실시, 서구와 계양구를 각각 분리시키고, 1995년 3월 1일 구명칭을"북구"에서"부평구"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평동(富平洞)
부평이란 이름은 고려 충선왕 2년(1310년)에 부평부라고 불려진데서 비롯된것으로 원래 부평지역은 현재 계양구 계산동이
그 중심지였으나, 부평역이 생기면서 그 주변과 시장 지역을 부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지역은 한말에는 부평구 동소정면 대정리로 되었다가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 대정리로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소화정이라 불렸으며, 해방과 더불어 1948년에 부평동으로 개칭되었다.
* 부평동의 행정동으로는 부평 1,2,3,4,5,6동이 있음
산곡동(山谷洞)
산곡동은 한말에는 부평군 마장면 산곡리였고, 1940년 인천부역 확장으로 인해 인천부로 편입되어 백마정이라 불렀으며, 1946년 다시 산곡동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서 군마를 길렀던 관계로 마장면이라 불려지기도 했으며, "뫼끝말"과 "장끝말" 두 개의 자연 부락이 있었다.
* 산곡동의 행정동으 로는 산곡1,2,3,4동이 있음
청천동(淸川洞)
청천동이란 이름은 이곳을 흐르는 청천에서 연유된 이름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청천리로 되었으며, 1940년에는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천상정으로 되었다가 1946년에 다시 청천동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은 부평평야가 시작되는 넓은 곡창지대에 속했으나 1960년대부터 부평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급격히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농경지가 전혀 없는 자동차공업의 요람으로 변모하였다. 이곳에는 "마제이", "동양사택"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다.
* 청천동의 행정동으로는 청천1,2동이 있음
갈산동(葛山洞)
갈산동이란 칡넝쿨이 많은 갈산밑에 있는 마을이란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옛부터 이곳은 "갈월리"라고 불리었다. 이곳은 한말에는 부평군 서면 갈월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갈월리로 되었고, 1940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갈야정이라 불려졌으며, 해방후에 갈산동으로 개칭되었다.
* 갈산동의 행정동으로는 갈산 1,2동이 있음
삼산동(三山洞)
삼산동이란 이 지역이 영선산, 갈산, 금산 등 3개 산줄기 밑에 둘러싸인 분지 모양의 지형에서 생긴 이름으로 한말 부평군 서면 후정리 라고 불렸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후정리로 되었고, 1940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삼립정이라 불려졌다가 1946년에 삼산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55년에는 갈산동에 편입되었다가 1992년에 분동되어, 독립된 행정동이 되었다.
부개동(富開洞)
부개동이란 부평의 초입지로써 부평이 시작되는 곳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마분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마분리로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명치정으로 되었다가 1946년 부개봉의 산이름을 따서 부개동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일신동, 구산동을 통합하였다가 1982년에 일신동(구산동 포함), 1985년에 부개2동, 1992년에 부개3동으로 각각 분동 되었다.
* 부개동의 행정동으로는 부개 1,2,3동이 있음
일신동(日新洞)
일신동이란 해방후 모든 것이 새로워진 동네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항동이었으나,1914년 부천군 부내면 항동리로 되었다가 1940년에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향취정이 되었고, 1946년에 이르러 일신동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항동을 항굴이라 불렀으며, 동네가 배(舟)의 형국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옛부터 동네안에 우물을 파면 동네가 망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개화의 물결에 힘입어 주민들이 동네안에 우물을 판 결과 일본군이 군용지로 수용하면서부터 마을사람들이 밀려나게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일신동 지역의 대부분이 군주둔지로의 역할이 계속되고 있으나, 현재 대규모 APT단지의 조성과 도시외곽도로의 건설 등으로 동네가 다시 일신(日新)되고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구산동(九山洞)
구산동은 원래 거마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형세가 마치 거북의 등성 이와 같다하여 구산(龜山)이라 불려졌으나, 1914년 행정착오로 구산리(九山里)로 오기(誤記)한 것이 오늘날까지 九山洞이란 명칭으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구산리 였었는데,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 구산리가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어 이등정이 되었으며, 1946년에 다시 구산동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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