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공원, 암울했던 역사 딛고 평화의 장소로 거듭나다
-부평공원에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세워져-
2017-08-24 <발행 제257호>
부평공원. 걸음을 멈추고 징용노동자상과 마주한다. 일제에 저항하며 해방을 염원했던 절실한 몸짓의 아버지와 그 손을 붙들고 있는 어린 딸, 그 뒤 부조에 새겨진 70년 전 당시의 상황들이 잠시 그 시간으로 이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상황, 내가 겪었다면 어땠을까?’ 돌아서는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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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취재기자
부평공원에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세워져
+ 광복절을 3일 앞둔 지난 8월 12일 부평공원에서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제막식이 있었다.
부평공원 일대는 일제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이 있던 곳으로 주변에는 일본육군조병창 등 대규모 군수공장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돼 노동 착취와 인권을 유린당한 채 고통을 겪었다.
(사)인천민예총은 어두웠던 역사를 되새겨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징용노동자상 건립에 나섰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일제강점기 징용 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시민들의 성금이 모였고, 제막식 기금 마련을 위한 평화 양말도 판매했다.
부평공원에는 지난해 10월 ‘인천평화의 소녀상’ 이후 ‘징용노동자상’이 연이어 세워졌다. 이에 부평공원이 평범한 공원이 아닌 평화를 지키는 자리가 되도록 공원 명칭을 ‘부평평화공원’으로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삶이 잊히지 않고 기억되기를
+ 이날 제막식에는 실제 모델인 지영례(여, 89세) 할머니와 고 이연형(남, 1921~2009) 씨의 딸인 이숙자 씨도 참석했다.
몸이 불편한 지영례 님을 동행한 며느리는 “시어머니께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조병창에 징용을 가게 됐다고 말씀하셨다.”라며, “잊지 않고 우리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하신다.”라고 전했다.
고 이연형 씨의 딸 이숙자 씨도 “독립운동한 아버지는 그나마 이름이나 남았는데, 이름 없이 잊히고 사라진 분들이 많다. 징용노동자상을 계기로 그들의 아픔도 기억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작가 이원석은 당시 실존 인물인 지영례, 이연형 씨의 개인사를 조각상에 녹여 역사와 지역성, 해방을 염원하는 민족의 의지를 담아냈다.
조각상이 세워진 이후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간간이 조각상 앞에 머물렀다. 두 인물과 부조, 설명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해방의 예감’ 이라 이름 지어진 징용노동자상은 많은 시민에게 잊혔던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사진설명>
실존하는 동시대 인물을 부녀지간으로 표현한 ‘해방의 예감’
■ 이원석 조각가와 일문일답
* 작품에는 무엇을 담고 싶었나
조병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우리 민중의 대립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태도로 살았을까를 고민했다. 그중 희망과 의지, 해방을 갈망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아버지와 딸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싶었다.
* 작업하면서 부평에 대해 느낀 점은
이렇게 큰 역사적 무게감을 안고 있는 땅이 또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고작 70여 년 지났을 뿐인데 잊고 사는 이들이 많더라.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이곳 부평의 역사를 자신의 요소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부평구민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기념비는 기억하고 되새기며 반성하는 의미다. ‘해방의 예감’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이 땅의 역사가 읽힌다. 기념비가 단순히 상징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공감이나 개인의 감정까지 채워지길 바란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