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리움 따라 찾아간 산곡동 '영단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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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발행 제235호>
빛바랜 간판들, 조붓한 골목의 빨래,
소박한 문턱과 낮은 지붕…….
산곡동 영단주택가엔 면면히 흐르는 역사와 70여 년의 세월이 아로새겨졌다.
이곳을 터전 삼아 한평생 기대어 온 이웃이기에 담장을 넘는 주민들의 이야기엔 고소한 정이 넘친다.
볕 좋은 날 주택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세월을 되새겨 보았다.
면면히 흐르는 역사와 70여 년의 세월이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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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주택, 아득한 기억을 뒤척이다
산곡동 근로자 주택은 1939년 일본육군조병창이 설립되면서, 그곳에 근무했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사택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미군이 주둔한 1945년부터 애스컴이 해체되는 1973년까지 이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종업원 등 서민들의 임대 주택으로 사용됐다. 이웃한 동네의 풍경은 수 번 달라졌지만, 이곳엔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18세 때부터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홍성일 씨나 부평미군기지 항공정비대에서 근무했던 이응경 씨도 다르지 않다. 고령인 주민들은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시간이 되면 미용실과 마트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좁은 골목길은 빨래나 생선, 고추를 말리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사람뿐 아니라 구역의 전체적인 구조도 큰 변화 없이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50년 이상 거주하며 생활했던 주민들의 소장 자료는 산곡동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산이다. 비록 조병창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영단주택은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변화된 시점에 건설된 근대 주거 문화이기에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 지속적인 슬럼화 현상으로 안전과 화재에 노출돼 있다. 또 2000년대 들어 개발 붐이 일었고 이후 현재까지 재개발 사업과 얽히면서 이곳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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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개발 사이,
‘산곡동 사택을 저장하라’
갈림길에 선 산곡동 영단주택은 1천여 가구가 훌쩍 넘는다. 주택을 따라 걷다 보면 백마극장, 봉다방, 경충철물, 정아식당 등 역사와 추억, 삶이 깃든 장소들이 여전히 자리한다.
하지만 향후 이루어질 재개발과 노후로 인한 보수작업으로 이들 건물을 포함한 영단주택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승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마을 주민들이 동네 곳곳의 기록을 위해 직접 나섰다. 산곡1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 명신여고 학생들, 부평역사박물관이 MOU를 체결해 팀을 이루었다.
이들은 오는 11월 말까지 담당 구역을 정해 부평의 발전과정에 따라 변모한 산곡동 일대 사택지와 사택에 거주하거나 사택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난다. 또 보존가치가 있는 자료들은 모아서 사진이나 육성, 그림 등으로 기록을 남긴다. 정리된 자료는 전자매체나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지지부진한 재개발,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져 갈 역사의 갈림길에서 주민들은 때때로 푸념 섞인 체념과 추억, 기대 등을 한꺼번에 꺼내 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눅진하게 버무려진 현재 상황임에도 이들의 삶은 여전히 단단해 보였다. 오랜 시간 서로 기대어 시간을 나누고 품어온 희망을 공유해온 삶 때문이 아닐까.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