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뒤안길, 희망을 말하다 - 부평 2동 ‘미쓰비시 줄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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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발행 제229호>
4월의 봄날.
한 자락 바람이 골목길을 훑는다.
저마다 굳게 닫힌 문,
밋밋하고 빛깔을 잃은 집들 사이에서 팔순에 가까운 여덕례 어르신이
빼꼼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오래된 살림집이라 혹시나 했던 마음이
사람의 온기를 느끼면서 따스해지는 순간이다.
고여 있는 시간,
역사의 일면을 간직한
병풍 같은 가옥들
쓰디쓴 역사에 드리워진 현재의 삶
부평2동에는 아득한 시간의 깊이를 추억할 만한 장소가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연립주택가에 나란히 줄지어 선 집들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고여 있는 시간을 엿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역사의 일면을 간직한 채 살아온 90여 가구의 시작은 약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은 부평지역의 민가를 강제 철거하고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숙소를 이곳에 지었다. 일명 ‘미쓰비시 줄 사택’이라 불리던 이곳엔 땅을 빼앗긴 농민과 징용을 피해 공장에 일하러 온 젊은이들이 머물렀다. 그로부터 수십 년, 개발의 손길은 이곳을 피해갔다. 모든 집이 칸막이 식이어서 한 가구만을 개선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90여 가구 중 사람이 사는 곳은 40여 가구 남짓. 나머지 집들은 지붕이 무너져 붕괴했거나 폐가로 남아 있다. 또 몇몇 가구를 제외하곤 대부분 공공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을 만큼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무기력해 보이는 마을 표정 바꾸기
이곳이 최근 대통령직속지역발전위원회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70여 년 동안 한 번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았던 곳이기에 최소한의 안전과 기본적인 주거여건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부평구는 2018년까지 앞으로 3년 동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연차적으로 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우선 가장 시급한 공동화장실을 마련하고 위험 건축물 개량과 집수리, 빈집과 폐가 등을 매입해 편의시설 등도 건립한다. 주거지 내 빨래방이나 원주민을 위한 소규모 장기임대주택도 고민하고 있다. 또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주민 커뮤니티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한편 도시재생프로젝트 진행을 앞두고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이곳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원주민의 공동체를 보전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보다 더 좋은 생활 여건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씁쓸한 역사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부평2동 ‘미쓰비시 줄 사택’이 무거운 환경에서 벗어나 훈훈한 온기가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봄날의 꽃바람처럼.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