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모시고 한 첫 집들이 - 허고운(부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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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7 <발행 제348호>
1월 22일, 드디어 부평구민이 됐다. 터파기 공사부터 진행 상황이 궁금해 자주 살펴보고, 비가 오면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그렇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 집에 입주했다.
가장 먼저 아빠를 모시고 집들이하고 싶었지만, 하자 보수와 추운 날씨, 아빠의 건강 문제로 미뤄지다가 오늘 마침내 하게 됐다.
현관에 들어서시는 아빠를 마중하니 아빠는 의아한 표정으로 “네가 왜 여기 있니?”라고 물으셨다.
“아빠,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낯선 환경에 긴장한 아빠는 외투도, 모자도 벗지 않으신 채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다. “좋다, 좋다.” 감탄을 연발하는 엄마를 눈으로만 따라가며 불안해하셨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으신 아빠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계신다.
아빠를 안정시키기 위해 옛날 사진을 TV 화면에 띄웠다.
“이 사람은 누구죠?”
“아버지. 그리고 그 옆은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앉고 있는 아기는 작은누이.”
나는 난청이 있는 아빠가 들으실 수 있게 귀에 바짝 대고 말했다.
“아빠, 저랑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빚 없이 이 집 마련했어요. 저 잘했죠?”
그러자 아빠는 내 손을 토닥이시며 “대견하다, 수고했다, 고맙다.” 하셨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지갑을 달라고 하시더니 거금 만 원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아빠는 부지런함과 근검함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이다. 그런 아빠에게 빚 없이 큰 집을 장만한 딸은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한 달 월급 20만 원을 받으시며 일하시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아빠에게 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부자 되라고 주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큰 돈.
식사하는 내내 아빠는 “고맙다, 잘했다.” 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따뜻한 눈빛을 보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아빠가 지금 모습 그대로이길.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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