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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오형제 - 서동욱(창원시 성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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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발행 제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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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농촌에서 자랐다. 버스를 타고 가면 어느 순간 풍경이 바뀌면서 도로 옆에 논과 밭이 나 오는 그런 곳이었다. 나의 또래 친구들은 동네에 5명이 있 었고 우리는 당시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런 우리를 동네 어른들은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렀다.
우리 독수리 오형제는 독수리 구장이라고 하는 우리만의 전용 축구경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경기장은 바로 농한기의 논이었다. 벼를 다 베어서 공터가 된 그라운드에서 하는 축구는 정말 신이 났다. 그 이유는 논이 울퉁불퉁해서 축구공이 지그재그로 튕기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2대 3 또는 한 명은 깍두기로 넣어서 해질 때까지 하는 축구 경기는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느 겨울날 독수리 오형제는 방학 숙제를 냉큼 해놓고 논에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날은 쥐불놀이하는 날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맘마밀 분유통에 망치와 못으로 통풍구를 뚫었다. 바람구멍을 만들어둬야 쥐불이 더 잘 탄다면서 신나게 쥐불놀이 통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땔감을 구하고 볏짚을 모아서 불을 붙였다. 느지막한 오후의 드넓은 들판에 빙빙 도는 쥐불 5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는 이들은 갑작스러운 불 쇼에 흥미진진했으리라. 그러던 찰나 친구 형욱이(가명)의 철사가 끊어지면서 쥐불놀이 통이 옆 탱자 나무 숲에 떨어지고 말았다.
“타닥타닥” “야! 큰일 났어! 불이 숲에 붙어버렸어!!”
겨울의 건조한 날씨에 탱자나무는 쥐불과 만나 탁탁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의리에 죽고 사는 우리는 형욱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급한 나머지 바람구멍이 난 쥐 불놀이 통에 도랑물을 담아서 쏜살같이 탱자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도랑물을 쥐불놀이 통에 붓고 탱자나무숲으로 들고 가면 바람구멍으로 물이 줄줄 샌다. 하지만 우리 독수리 오형제는 사투 끝에 탱자나무의 화재를 결국 진압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커먼 숯검정으로 단장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참 웃었다.
농촌은 우리에게 놀거리였고 학습터였으며 우리를 키워준 엄마였다.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지겹지 않았고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던 우리는 자연에서 놀거리를 찾았다. 방과 후 집에 가는 길에 사루비아를 먹으며 자랐고 논의 황금 들판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논에서 축구하며 신체를 단련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농촌들이 인구가 줄어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그리운 상황이라고 한다. 너무도 안타깝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회색빛 도시에서 마스크를 쓴 채 미세먼지를 헤치고 학원에 가는 도시의 학생들을 보며, 농촌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기회가 저 어린 학생들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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