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니의 속바지 사랑 - 안경재(부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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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발행 제331호>
토독토독···. 금싸라기 같은 늦여름 햇살이 미처 여물지 못한 곡식 이삭을 재촉하듯 따갑게 내리쬐는 초가을 어느 날, 우리 집 거실엔 꽃무늬 속바지와 각양각색의 양말들이 수북하다.
수일 전 친구와의 통화 중에서 요양원에 들어가신 친정 부모님 집을 정리하던 중 장롱 서랍마다 꽉꽉 채워져 있는 내의와 양말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더니 오늘 몇 친구들 모임에 가져온 것이다.
모임을 마친 후, 챙겨놓은 것들을 펼쳐놓고 간추려 몫 지어 본다. ‘이것과 이건 큰언니, 이건 작은 올케언니, 이건 동생 것’. 충분히 주고도 남을 양이다.
머릿속 지우개가 삶의 기억을 거꾸로 지워가기 시작하면서 그 친구의 어머님의 속옷 사재기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어머님은 그 어떤 것이 마음에 걸려 이 많은 속옷을 사모아 상표조차 뜯지 않은 채 쟁여 두셨을까?
강원도 설악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는 지리적으로 유난히 추운 겨울들을 보냈다 한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듯이, 그 친구 역시 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당연한 듯 따라오는 동상의 흔적들로 콩 자루 속에 발을 넣고 자기도 하고, 가지나무 등걸 삶은 물에 발을 담근 채 긴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한다.
몹시도 춥고 배고팠던 시절 변변한 내복하나 입지 못하고 구멍 난 양말에 고무신을 신고 눈산을 넘어 학교에 다니는 자식의 뒷모습에 한이 맺혀서일까 아니면 군불 지펴 따뜻한 방 아랫목에서 사랑하는 남편 앞에 꽃무늬 잠옷 바지 입고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새색시 적 작은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해서일까. 어쨌든 분명한 건 그 어머님이 내복을 고르고 양말을 고르는 순간은 무척이나 행복하셨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을 입고 신고 좋아할 딸이나 자매, 아니 더 춥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 어머님의 어머니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어 더 이상의 물건은 쌓이지 않겠지만, 그 나눔의 사랑 바람은 손에 손을 타고 너울져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고 있다.
멀리 내 고향에서 땅을 지키고 사는 올케언니의 작업화 속에서, 70의 나이에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친정 언니의 단화 속에서, 귀농한 친구와 그 이웃 어르신들의 발을 감싸고, 또 그네들의 딸, 며느리들이 불쑥 찾았을 때 편안한 잠자리 옷이 되어서 말이다.
얼마 전 먼 길 떠나신 어머님의 나라는 영원히 따뜻하리라 믿어봅니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