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보다 날카로운 - 글 노선아(대정로)
--
2021-12-01 <발행 제308호>
2004년의 어느 가을이었다. 이성 친구가 나의 손을 잡으려고 시도했던 날이었다. 그것을 뿌리치려고 팔에 강하게 힘을 주다가 어깨가 빠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외상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어지러웠고 길거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손을 잡으려고 했던 것뿐인데….” 롯데마트 앞 광장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자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었다.
“뭘 했길래 저렇게 애가 쓰러진 거지? 어머 어떻게 해,” 몰려든 그들은 각자의 시각과 생각대로 말들을 쏟아냈다. 걱정하는 눈빛도 있었고 나와 내 친구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도 느껴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탈선의 현장을 본 것 마냥 지레짐작하고 오해하여 마음대로 지껄이기도 했다.
“저것 봐, 어린 것들이 술 처먹고 저 여자애 취해서 저렇게 누워 있는 것 아니야? 쯧쯧”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전하고 선량한 학생인 우리를 저런 식으로 매도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하고 자존심 상했다. 술과 담배 같은 것은 불량한 양아치들만 영위하는 것이다. 술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입에 대지도 곁에 두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는 모범적인 우리였다.
단순히 여학생과 남학생의 이성 조합이라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따위 말을 하다니.
하지만 저렇게 얘기하는 어른들에게 가서 “저희 공부 열심히 하고 잘하는 착한 학생들입니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술 마시고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오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지켜보던 행인 중 누군가가 구급차를 불러 주었고 쓰러진 지 얼마의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구급차가 주변에 정차하고 나를 실어 갔다. 처음 느껴보는 죽을 것 같은 통증에 모든 것이 무섭고 불안했다. 지금은 없어진 부평의 어느 정형외과에서 마취 없이 뒤틀린 어깨를 접골했다. 그 이후에도 나의 탈골은 계속되었고 10번 넘게 온갖 곳에서 어깨가 빠졌다. 지금은 어깨 수술을 해서 더 빠지지 않는다.
그 광장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지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떠한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보고 싶은 색안경으로 나를 폄훼하던 시선. 10년이나 더 지났지만, 광장에서의 그 차가운 눈빛들과 말들이 아직도 날카롭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