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받지 말아야 - 글. 문곡(산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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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발행 제2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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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단지 주차장에는 인적이 없었다. 차량 한 대가 전·후진 중 쿵 소리와 함께 급정지를 했다. 브레이크 등이 켜졌고, 차에서 내린 남자는 접촉된 위치에 섰다. 받힌 차량을 힐끔 보더니 받은 차량 접촉 부위 앞에서, 한참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는 옆면 모습이 보였다. 고민했는지 휴지를 들고 나와 자신의 차량 접촉 부위를 훔쳤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차해 사라졌다. 블랙박스에 생생하게 촬영된 영상이다. 도덕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인간의 단면을 본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러웠다.
사고가 난 것을 확인하고 블랙박스의 칩을 열어보니 수입차량의 번호가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출고한지 두 달 만의 일이다. 새 차에 큰 흠집을 내 놓고, 나 몰라라 도주를 했으니 괘씸하고 불편했다.
관리소 직원 등 입장을 고려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탈이 없겠다 싶었다. 퇴근 후 경찰서에 들러 사고 접수를 마쳤다. 담당경찰도 문제의 영상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동 주민으로서 함께 산다는 아파트가 삭막하게 느껴진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니,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까. 그랬다면 마음 한 구석 영원히 앙금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남자처럼 넓은 평수에 외제차량까지 소유할 능력은 없지만, 얼굴이 두껍지 못해 남을 등치거나 피해를 준 일은 숨기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무리 도심 속 아파트의 삶이 인간의 정까지 메마르게 한다고 하지만, 마음까지 불행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주차장에서 차주의 연락처를 보게 되었는데, 스티커 문구가 가상했다. ‘주차 매너도 지키고, 프라이버시도 지키자.’는 글귀가 뇌리에 선명하고 강하게 꽂혔다. 차주를 잘못 만나 차량까지 비난을 받는구나. 남자는 남자의 위풍당당한 차량에 반비례하여 인품은 함량미달인 것 같았다. 각인된 문구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말 한마디면 풀 수 있었던 일을, 상대방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고 깔끔하고 산뜻하게 마무리 됐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일로 콘크리트 벽의 무게만큼이나 입을 닫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더라도, 공동주택이라는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둥글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