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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수제비 - 박희옥(산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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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발행 제2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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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남편을 위해 식탁에 올리는 밀가루 음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수제비이다.
언제인지 확실치 않지만, 장년층 세대에 해당하는 남편은 대뜸 내게 다가와 어린아이처럼 수제비를 만들어 달라고 간청을 했기 때문이다.
누리끼리한 2등품 밀가루와 손가락 마디만큼 굵은 왕 멸치가 들어간 추억의 수제비 맛이 돌아가신 어머니만큼 그립다는 것이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입맛이 당긴다는 수제비를 통해 작은 위안과 큰 기쁨을 얻으려는 남편의 애틋한 마음에 난 기꺼이 동조하기로 했다.
팔을 걷어붙인 채 주방을 향해 가고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냄비 안에 물을 팔팔 끓인 다음, 굵은 멸치와 마늘, 호박, 양파, 풋고추를 넣어 걸쭉한 육수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다.
그리고 열심히 치댄 밀가루를 손으로 미련 없이 뚝뚝 뜯어 넣으면 된다.
익으면서 한 점 한 점 물 위로 올라오는 수제비를 보면, 마치 잠수해 있던 올챙이가 고개를 든 채 솟구치는 형상 그 자체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잘 완성된 수제비를 본 남편은 그 옛날 어머니 표 수제비는 아니긴 해도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은다.
게다가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것을 익히 숙지한 남편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한 외양의 수제비는 이렇듯 남편의 시선을 잡아끌어 들일 만큼 꽤 친근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밍밍하면서 쫄깃쫄깃한 식감의 수제비가 빗소리를 만나면, 오감을 만족하게 해주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데 과연 그럴지 난 잘 못 느끼겠는데.
남편 말마따나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어야 그 진면목을 발휘하는 수제비라서, 앞으로 장마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수제비를 만들어야 할지 적이 신경이 쓰인다.
여하튼 우리 부부는 가성비와 가심비가 최고인 추억의 수제비를 통해 황금빛 여유와 그윽한 희열을 맛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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