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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근다리와 섶다리 - 글. 진상용(삼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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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발행 제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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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근다리’는 청천천과 굴포천 합수머리께인 부평구청 인근의 지명이다. 땅이름의 유래가 궁금해 이삭 줍듯 이리저리 유래를 알아보니, 오래전부터 다리가 있던 곳인데 통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다리가 삭아 ‘삭은다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새로 만든 콘크리트 다리를 사근다리라 부르다가 지금은 그 일대를 지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건너다니기 위험할 만큼 낡은 다리라는 의미이니 부정적 뜻이 짙은데도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리는 예나 지금이나 단절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에 맞는 교량이 필요하며, 내 어릴 적의 추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내가 태어나서 자란 강원도 고향 마을 앞에는 꽤 큰 개울이 있다. 마을 뒤를 높이 막은 험악한 산줄기와 큰 개울 때문에 돌려난 듯 외진 마을을 나서기 위해선 그 개울을 건너야 한다. 상류 쪽에 시멘트 다리가 놓이긴 했지만, 사람들은 한 걸음이라도 아끼느라 신발과 양말을 벗어 손에 들고 얕은 데를 골라 건너다녔다.
가을이 깊고 살얼음 잡히기 직전의 찬물에 발 담그기 어려워지면 개울 양쪽에 사는 사람들은 날을 잡아 다리 놓는 울력을 했다. 가쟁이가 알맞게 벌어진 나무를 베어다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솔가리 우적 따위를 걸쳐 엮은 다음 흙을 져다 덮어 만든 엉성한 다리였지만 그래도 이듬해 장마의 큰물에 떠내려가기 전까지는 마을의 가장 요긴한 시설물 구실을 했다.
석양 무렵에야 다 만들어진 다리를 양쪽 좌상 어른이 먼저 건너고 나머지 사람들은 줄줄이 뒤따르며 튼튼하게 오래가도록 잘 밟는다. 섶다리는 양쪽 마을 사람들을 건너게 해주는 용도 외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중 예절과 사회 규범의 척도가 되는데, 워낙 폭이 좁아 한 사람만 겨우 건널 수가 있으니 양쪽에서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통상적인 경우 연장자가 먼저 건너는 게 관례고 그다음은 몸이 불편하거나 짐이 있는 사람을 앞에 건너도록 배려한다.
그 강에도 얼마 전 큰 다리가 생겼다. 도로나 교통 사정도 좋아졌으니 영원히 섶다리가 필요 없어진 지금, 아직도 성장통을 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사근다리에서 문득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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