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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아이처럼

-이충구(안남로)-

2015-04-27  <발행 제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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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따듯한
웃음을 지으며
‘세 살 아이처럼’이라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은
밤입니다.


사무실이 부평으로 이사 온 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이곳은 생각보다 아름다워서 내가 앉아있는 낮은 책상을 제외한 모든 창으로 굴포천의 여유로운 흐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가 지는 시간, 뿌옇게 시냇물 안개가 오르고 창밖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건물들 너머에는 벌써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어제와 오늘, 향이 진한 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저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저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업무를 끝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TV와 책, 영화를 보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잠 속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갈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같은 일상으로 보내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문득 지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부터 봄비가 내리는 창밖에선 봄을 알리는 꽃잎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은 무릎에 누워있는 세 살배기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매우 익숙한 듯한 느낌은 아마도 지난 일상에 대한 아쉬운 향수 탓이겠지요.
아직 지나가지 않은 지금에 대해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아닌 오로지 저 자신의 순간들 말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 앞에서 작아져 가는 저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져 눈을 감아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할머니의 무릎으로 돌아가 그럴싸한 가면을 집어 던진 세 살 아이처럼 시간에 미소 짓고 싶습니다. 어른이 흘려야 하는 눈물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 저는 이마저도 쉽게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세 살 아이처럼’이라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은 밤입니다.
우리가 일상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기억하기 시작한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세 살 아이의 천진난만한 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행복한 미소는 어른이라는 시간 속에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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