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의 역사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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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발행제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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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평화발자국 참관기>
/ 이목연(소설가)
‘인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인천평화발자국 행사에 참가했다.
인천의 역사 속에 평화가 파괴된 현장을 찾아 전문해설가와 함께 걸으며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는 행사인 ‘인천평화발자국’은 벌써 9회를 맞고 있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조병창에서 애스컴시티로, 부평미군기지 반환’이었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개항지로서 근대 문물을 가장 먼저 접했던 인천은 근대화 과정을 치열하게 겪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부평은 도시의 반 이상을 일제의 군수공장으로 내주어야 했던 역사의 무대다.
행사는 김현석 해설사로부터 인천 주변의 고대역사와 문학적 배경이 된 부평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과 더불어 미군의 보급부대였던 애스컴의 주둔과 그 뒤를 이어 산업화의 중심이 되었던 부평에 대해 한 시간 남짓 강의를 듣고 현장을 탐방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재개발을 앞둔 산곡동의 검정사택지와 영단주택단지는 부지 선택과 설계과정을 거쳐 쾌적하고 위생적인 질 좋은 주택을 보급하기 위해 마을 중심에 광장과 아동유원지 급수시설 등을 설치하였던 이른바 신도시였다.
일본이 물러가고 애스컴이 들어서자 주둔한 미군들을 대상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도깨비 시장의 상인이나 소위 양공주라 불리던 직업여성들이 들어찼던 골목엔 미군이 감축되며 들어선 부평공단의 근로자들이 머물렀고, 부평의 공장들이 떠난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나 일선에서 물러난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세월의 두께가 쌓인 골목을 지나 아파트 숲 사이를 헤쳐 찾은 곳은 애스컴시티가 내려다보이는 경남아파트 옥상. 면적이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만 3천여 평에 달하는 애스컴시티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었다.
2016년에는 그 너른 부지가 온전히 주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전비용 문제 및 토양 환경오염 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이 해결책을 기다리고 있다.
질풍처럼 몰아친 백 년의 세월을 제대로 알기에는 부족한 한나절의 짧은 탐방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눈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군이 주둔했던 애스컴의 역사와 산업근로자들이 거쳐 간 근대화의 현장을 예리하게 살폈고 그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졌을 우리 조상들의 신산한 삶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