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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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 <>
지나가는 여러 버스 가운데 한 장애인을 위한 버스가 내 눈과 마음을 한참동안 붙들고 만다.
28년전,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몸이 아파 일찍 조퇴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타 한쪽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 성질 급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부릉거리며 올라타는 승객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굽혀지지 않는 한쪽다리와 비쩍마른 나머지 한쪽 다리로 절룩거리며 겅중겅중, 뒤뚱뒤뚱 급하게 버스에 올라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나의 아버지, 지체장애 2급인 아버지였다.
뒤늦게 마지막으로 올라탄 아버지는 급출발하는 버스 때문에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셨고, 기사아저씨는 성질 반, 짜증 반 섞인 목소리로 빨리 올라가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를 냅다 지르셨다.
아빠는 팔 한쪽도 마비되어 전혀 쓰질 못하신다. 그래서 빨리 움직이질 못하신다.
겨우 자리에 앉으신 아버지는 그제야 긴 한숨을 몰아쉬셨다.
난 온몸이 굳어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한 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소리없이 훔쳐내고만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일하시던 중 기차사고로 목숨만 겨우 건지고 장애인이 되셨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시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막연히 ‘참 많이 힘드시겠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루 한번도 아닌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타고 다니시는데, 아버지에게 버스를 타야 한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수도 있는 위험과 기사아저씨의 짜증섞인 말과 사람들의 온갖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야 하는 치열한 삶의 한 부분이었다.
계단 없는 낮은 바닥, 여기저기 세워진 편리한 봉들, 친절한 기사아저씨….
지금도 난 장애인을 위한 버스를 보면 마음 한 켠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오곤 한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시는 아버지, 제대로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장애인용 버스가 좀 더 일찍 생겼었더라면, 아버지가 좀 더 건강하셔서 그 버스를 한번 타 보셨으면 좋겠다….’
장애인용 버스를 보면 아직도 난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우리 아버지가 버스를 타시던 그때 그 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용 버스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 장애우’라서 또 한번 마음이 아파온다.
-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딸 강선 -
서강선(부평1동)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