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구마 줄기를 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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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
집에 들어오는 길에 생협 매장에 들러 장을 봤다. 오랜 만에 고구마 줄기가 눈에 띄었다. 살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다.
어린 시절 고구마 줄기를 수 도 없이 깠다.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만만한 게 고구마 줄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까서 다듬어야 하는 사람은 오빠도 막내도 아닌 나여야 했다.
그 땐 참 지겨워했었다. 하지만 손톱에 붉게 물들고 뻣뻣한 느낌이 들어 짜증이 나다가도 어머니가 손을 보아 데치고 볶는 과정을 거쳐 밥상에 올라오면 내 맘은 달라졌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짭짤하고 씹는 맛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그 기억때문인지 결혼을 하고서도 종종 고구마 줄기를 사서 반찬을 하곤 했다.
그러다 주말농장이랍시고 손바닥만한 밭을 얻었다. 봄에는 각종 채소랑 감자, 토마토 등을 심고 여름이 되어 그것들을 걷어내면서 고구마를 심었다. 달달한 고구마를 먹을 생각에 또 고구마 줄기로 나물을 해 먹을 생각에 1석2조라며 콧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싹이 나는 것도 예쁘고 고구마 잎과 줄기가 뻗어가는 것도 예뻤다. 그러다 줄기가 무성해지면서 자꾸 남의 밭을 침범하는 고구마줄기를 정리하는 게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씩 뜯어서 고구마 줄기를 볶아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점점 많아지는 고구마 줄기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 집 저 집 나눠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고구마는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손톱은 흙빛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고구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드디어 고구마를 캘 때가 되었다. 고구가 캐기는 감자보다는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그런데 고구마를 다 캐고 나니 산같이 쌓인 고구마 줄기가 보였다.
‘헉, 어쩌지?’
공포감마저 들었다. 사돈에 팔촌까지 다 나눠주고도 엄청난 양이 내게 남았다. 그 해 난 결심했다.
‘다시는 고구마 줄기를 먹는 것은 고사하고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진짜로 몇 해 동안은 고구마 줄기를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음식점에서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한 참 지나니 그 맛이 떠올라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까서 파는 것을 사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까지도 않은 그 놈의 고구마 줄기가 내 맘을 잡아끌었다. 한참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하다 그냥 샀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금 난 손이 새카매졌다. 손톱에 붉은 물도 들었다. 그런데 왠지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먹을 생각에. 식구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어서 데치고 볶아서 저녁상에 올려야겠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