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다녀와서
-부평6동 김소자-
2012-10-24 <>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도 더 맑고 높은 것 같다.
중국 여행의 셋째날, 백두산에 가는 날이다. 31명의 6,70대의 할머니들이 모두 마음만은 소녀같아서 아침부터 들떠있다. 버스에 타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밤새 잠을 설쳤다느니, 벌써 백두산 정상에 올라갔다 온 꿈을 꾸었다느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올라갔느냐는 둥 얘기꽃을 피운다.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다. 우리는 백두산 산 아래턱 계단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1,340계단을 올라야 정상이라는데 계단 양쪽으로 벌판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하얗게 눈과 얼음이 군데군데 얼어붙어 있었다. 가이드 한 사람이 앞서서 몇 명과 함께 정상도전을 하고 다른 가이드와 뒤진 사람들이 뒤따라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데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먼저 간 사람은 정상에 올랐지만, 뒤따라간 몇몇은 아직 정상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중의 하나가 나였다. 정상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먹구름으로 변하더니 심하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 본 순간 영화에서나 본 장면을 보았다.
심한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정상에 있는 사람들을 휘감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순간, 난 모두 죽는 줄만 알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금방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휩쓸려 죽을 것만 같아 계단 난간을 잡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눈보라에 길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눈보라 속에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니 내 친구 한나가 길을 못 찾고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올라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한나야! 천천히 난간잡고 내려와. 한나야! 대답해봐!” 계속해서 불렀다. 한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응. 응.” 대답은 들려왔다. 그러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몇 십번을 미친 듯이 불렀다. “응. 응.” 대답은 들려왔다. 한나의 대답이 조금씩 커지면서 이내 한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나야!” 그리고 드디어 한나와 만났다. 나는 막 울었다. 한나의 머리에 눈이 얼어 붙어있었다. 난 울면서 눈을 떼어내었다. 한나가 빙그레 웃었다. 한나는 두 번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졌었던 친구다.
15분 정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다시 화창했다. 가이드도 가이드 생활 17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위기일발의 순간들을 넘기고 무사히 백두산 산행을 마쳤다.
죽음이 느껴진 그 15분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일 없이 돌아온 것이 감사하나, 그 15분이 내게 깨닫게 해준 것들이 더욱 감사하다.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져서 이 여행을 고사했던 한나도 내게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지… 새삼 느낀 것도 그 깨달음중의 하나다.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이 반갑게 맞아준다. 남편의 얼굴도 새삼 달리 보인다. 죽는 순간까지 느끼고, 죽는 순간까지 깨닫고, 죽는 순간까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마음만은 소녀 같은 70대 할머니들의 즐겁고 소중한 백두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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