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지금 들어오는 선수 누군가요?
-이 지 수 (삼산1동) -
2012-08-23 <>
올림픽이 한창이다. TV를 켜면 세계의 정상에 선 얼굴들이 가득하다. 날이 선 눈빛과 가무잡잡하게 탄 피부, 그리고 군살 없이 다부진 몸매. 그들은 그런 포스를 풍겼다. 승리자의 포스. 날씨까지 신기록을 세우는 2012년의 여름은 온통 승리자들 투성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백수의 왕처럼 늘어난 낡은 티셔츠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포털 사이트를 켜니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름과 아이돌 가수 몇몇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 이름들은 엎치락뒤치락 순위 경쟁 중이었다.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확인하다가 기보배 선수의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88년생. 김지연 선수의 프로필을 봤다. 88년 생. 조준호 선수? 88년 생. 이용대, 88년 생. 박태환? 89년 생... 어라? 김장미... 92년 생......! 그들이 세계의 정상에 설 동안 나는 뭘 했지?
가만히 앉아서 가십거리를 소화시키고, 간간히 들어오는 알바를 해치우며, 파도조차 일지 않는 바다에 잠긴 듯,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었다. 박태환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노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멈춰버린 1초처럼 나의 젊음도 멈춰버리길 바라며 의지도 없이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이다음에 커서 뭐 될래?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 넌 목표가 어느 학교니? 학점은 잘 나오니? 졸업은 언제 하니? 취직은 됐니? 어느 회사에 지원할거니?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해가는 질문들 틈에 나는 흐리멍덩해져간다. 어렸을 때는 ‘작가가 되고 싶어!’ 라고 대답하더라도 괜찮았겠지만 더 이상은 괜찮지 못하다. 컴퓨터를 켜 놓고도 한자도 적을 수 없는 현실은 더욱 괜찮지 못하고. ‘엄마, 토익으로는 내 꿈을 이룰 수 없어요!’ 비명을 질러봐야 세상은 한통속이고, 동갑내기 승리자들은 멀어져만 간다.
인터넷 창을 탁! 꺼버린다. 클릭 한방으로 닫혀버리는 세상. 그리고 클릭 한방에 열린 또 다른 세상. 하얀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는 내가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 ‘시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 더위가 꺾일 때쯤 내 나이도 꺾이겠지만, 그게 뭔 대수랴.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마라톤이고, 나는 지금 페이스를 조절 중인 고독한 마라토너야, 하며 손가락을 푼다. 준비 운동은 끝났으니 이제 조금씩 속도를 내볼까?! 내 인생의 올림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나 둘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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