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웃 사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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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지방의 단독주택에서 이웃들과 허물없이 살다가 이곳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이사를 오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기껏해야 친구들이나 옛날 이사 오기 전 친했던 사람들과 전화로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다녀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어느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분이 엘리베이터 앞에 배추와 무를 잔뜩 쌓아놓고 어떻게 집안으로 옮겨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었다.
누군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지 않으면 저절로 닫혀버려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버튼 누르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옮기세요"
"아이고 고마워서 어째~ 자주 못 본 얼굴인데 새로 이사 왔수?"
"네, 일주일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아~ 그래요? 그럼 안 바쁘면 내가 고마워서 그러니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요"
엘리베이터 버튼 조금 눌러 줬다고 이런 대접까지 받는 게 송구스러웠지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고 앞으로 자주 마주칠 텐데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 순순히 따라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아들만 셋이고 딸이 없어 아쉽다고 하시며 딸처럼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안면이 트이게 되자 아주머니와 나는 친정엄마 이상으로 둘도 없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갑자기 손님을 치루거나 김장을 해야 했을 때 어김없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웃사촌이라더니 마음을 여니 의외로 따뜻한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느꼈다.
어제저녁 아주머니가 인터폰을 했다.
시골 사는 친척이 배추를 보내준다는데 양도 넉넉하니 올해는 김장을 두 집 것을 같이해서 똑같이 나누자고 하신다. 김장은 겨울양식이라 하는데 올해 김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김장하는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돼지고기 수육을 올해는 더 넉넉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보쌈에 김치 올려서 먹을 생각하니 벌써 군침이 돈다.
아마 김장하는 날이 잔칫날이 될 것 같다.
조혜미(삼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