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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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올라오고 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곳이 선포약수터입니다.
주말이면 머리도 식힐 겸 찾았던 약수터가 이제는 안방처럼 편합니다. 처음 약수 한 모금을 먹고자 가지고 갔던 작은 물통이 지금은 3L 커다란 물통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닦여진 길도 없었고, 잘 정돈된 약수터 시설도 없었습니다. 물 한 병을 받기 위해 앞에는 2~3명의 경쟁자를 두고 기다려야 했고, 여름에는 모기와 전쟁을 한판 벌여야 했습니다. 수도꼭지가 1~2개 밖에 없다 보니 가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은 물맛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나오는 시원하고 깨끗한 약수가 온몸의 피로를 싹 녹여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수는 원래 조금씩 나와야 제 맛이라는 말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겨울이면 해가 일찍 지는 탓에 깊은 산속은 아니었지만, 해가 금방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커다란 양초가 작은 옹달샘을 유일하게 지켜 주는 등대였습니다. 키가 작아지는 그 양초를 보면서 덜컥 겁도 나기도 했습니다. 어둠을 등지고 뭔가 툭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나무 우거지고 산새 지저귀는 봄이나 가을의 휴일 아침은 더없이 아름다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특히 벚꽃나무가 활짝 피고 약수터를 환하게 물들였을 때, 조카와 함께 와서 사진을 찍고 술래잡기를 하던 추억은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다란 의자에 누워 나무 사이로 보이던 파란 하늘도 고향 생각을 물씬 나게 만들었습니다.
약수터에 음식을 싸들고 와서 먹어 보라고 건네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의 천도복숭아의 아삭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산에서는 모두가 친구고 같이 나누고 베풀 수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 왔습니다. 천도복숭아 씨를 벚나무 옆에 꼭꼭 눌러 심었는데, 싹을 틔우지 않은 것을 보면, 땅 속에 꽁꽁 숨어 있겠죠. 이번 주말에는 약수도 뜰 겸 벚나무 옆을 유심히 훑어 봐야겠습니다.
참 많이 가꾸어진 선포 약수터는 옛날의 정취가 많이 사라지긴 했어도, 마음의 고향 자리만은 아직도 차지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한상대 (부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