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일대 부평문화권은 선조의 생활 터전
-전통적인 풍습과 생활문화에도 관심 필요 -
2013-07-25 <>
부평의 문화재
부평 문화는 크게 근대 문호개방 전과 후로 갈린다. 개방 전 문화재는 종류와 수가 다양하며 근대 문호개방 이후에는 신문물이 유입되면서 시대변화에 앞서 나갔다. 계양산 일대 부평문화권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삼국,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근대까지 오랜 세월 선조의 생활터전이 되어왔다. 서구 원당동과 당하동에서 구석기 유적이, 검단동에는 신석기 유물이 남아있다. 대곡동과 원당동에서는 청동기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역사시대 유적은 부평도호부와 부평향교, 계양산성, 중심성, 어사대, 욕은지 등이 남아 있다.
현재 부평거주 무형문화자원에는 강령탈춤 기능보유자 김실자 씨와 범패·작법무, 인천수륙제 기능보유자 일촌 스님(속명:박치훈), 자주장 김계순 씨 등이 있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 인공수로를 팠던 흔적이 남아있는 굴포천과 십정동 천일시험 염전지, 서구 경서동 녹청자도요지, 장기동 소재 황어장지, 삼일운동 중심지였던 한들방죽이 서구에 위치한다.
문화공간과 문화행사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부평아트센터, 문화사랑방, 인천여성가족재단(舊 인천여성회관), 부평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구립도서관(6개소),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부평도서관, 북구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다양한 문화행사도 많다. 대표적으로 1997년부터 시작된 부평풍물대축제가 있다. 청소년축제와 평생학습축제, 정월 대보름 행사도 매년 열린다. 최근에는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문화, 체육 활동과 축제 등이 확대되고 있다.
정체성 확립으로 후세에 문화 전달
문화유적은 현재 부평구가 아닌 서구와 계양구에 다수 분포되어 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산업발달의 가속화와 도시의 팽창으로 두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이 분구되면서 서구와 계양구가 분리된 까닭이다.
1995년 ‘북구’에서 ‘부평구’로 지명이 변경돼 역사적 지명은 계승하였으나, 전통적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계양구와 서구에 위치해 주민들이 느끼는 역사적 단절감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부평구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계양산 일대 문화권의 역사와 전통을 보호해야 함은 물론 근·현대 각종 산업과 생활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누리고 있는 문화를 온전히 후세에 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리 : 김지숙 명예기자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