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백마극장’과 ‘봉 다방’을 아시나요
-[연재 ⑦] 우리 동네 이야기 - 산곡1동을 찾아서 -
2012-09-24 <>
뫼곡마을이라 불리던 산곡1동은 익숙하고 정겨운 곳이 많다. 추억 속 옛 풍경처럼. 하지만 더디게 가는 이곳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끌벅적하게 교차되던 시절이 있었다. 긴 세월 산곡동과 함께한 염정호(70) 씨를 만나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산곡시장에서 뫼곡마을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산곡북초등학교 인근까지 걷다보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많다. 1940년대 일제가 부평에 조병창을 건설했을 당시 그곳 인부들이 거주했던 사택이었다. 작은 연립으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8가구씩 마주보았던 사택은 사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집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옛 모습은 아직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아픈 잔재가 서려있긴 해도 염 씨는 “집 구조 때문에 그래도 담장사이로 나누었던 이웃 간 정은 말 할 수 없이 따뜻했다.”라고 전한다.
산곡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곡시장 내에 위치한 ‘백마극장’이다. 백마극장은 60대 초 문을 열어 70년대 말까지 운영되었다. 놀이문화가 부족했던 시절, 학생들과 공수부대 대원들, 지식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었다. 멀티플렉스관이 생기면서 극장이 문을 닫고 한때 건물은 슈퍼가 되었다가 현재는 완전히 문이 닫힌 상태다.
백마극장 옆엔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던 ‘봉 다방’이 자리한다. 최정숙(77) 씨가 1974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만날 봉자를 써서 봉 다방인데 가게 이름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발붙이던 공간이었다. 군인들, 영화를 보기위해 기다렸던 사람들, 맞선 보는 사람 등등….
최 씨는 “선을 보는 사람에겐 더 깨끗하고 편안한 자리를 안내해 줬지요.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선을 보면 성사가 잘 된다는 소문에 사람도 많았어요. 최근엔 25년 전에 선을 봤던 사람이 찾아 왔었죠. 그 시절 얘기하면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무척 반갑더군요.”라며 아련한 시간들을 꺼내 놓았다.
이젠 세월과 함께 찾는 이의 발길도 뜸해지고 가끔 추억을 더듬어 그리움을 안은 이들만 종종 찾아오고 있지만 최 씨는 서로의 시간과 추억을 끌어안으며 끝까지 다방을 지켜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없어지면 사람들이 허전해하니까. 또 좋은 기억으로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 둘은 꼭 있으니까요.”
봉다방 주변은 산곡시장이다. 시장을 둘러보니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아 보인다. 큰 시장은 아니어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생기를 잃은 채 신발가게와 방앗간 등 몇몇 가게들만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며 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최근 동네에선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 많은 원 주민들이 타 동네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등이 되어주는 집들처럼 나긋한 정과 온기를 나누며 활기 있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지숙 명예기자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