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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개동 ‘코박굴 코바위 전설’

-[연재 ⑤] 우리 동네 이야기 - 부개2동을 찾아서 -

2012-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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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개동 ‘코박굴 코바위 전설’

부개동은 부평을 여는 동네라 불린다. 오래전에는 토박이말로 마분리라 불렀다. 그 유래는 일제 강점기 말 무덤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인데 그 위치는 세월에 가려 흐릿해 졌다. 부평동과 이웃하고 있는 만큼 재미난 전설도 전해진다.

부평사(부평사편찬위원회)에 의하면 옛날 대정리(부평동 일대)에는 코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대정리 사람이 그 바위에 멍석을 덮었는데 그때 마을의 남자들이 죽어 젊은 과부들이 생기고 여자들이 바람이 났다. 무당에 의해 코바위는 남자의 생식기를 뜻하고 음양의 조화가 어그러져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돼 그것을 치우게 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코바위에 멍석이 자주 덮였다. 마분리에 살고 있는 남자들이 장난삼아 한 것이다. 이 일로 두 동네 사이가 좋지 못하게 되었고 자주 분쟁이 발생했다. 보다 못한 원로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 놓았는데 먼저 잘못을 했던 마분리 사람들이 음식을 해와 대정리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게 한 것이다. 이후 두 마을은 어느 마을보다 더한 우애를 자랑하며 잘 지냈다는 이야기다. 코바위 역시 개발로 인해 사라져 이야기만 전해진다.

1970년대엔 어땠을까? 50대 중년들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있다. 부개동 토박이인 변옥균(50) 씨는 “만월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이 지금의 삼산동까지 이어졌어요. 비만 오면 넘쳐나 홍수가 났지만 복개천으로 변모되고 삼산동에 배수펌프시설이 갖춰진 이후 완화되었죠.”라고 전한다.

개울이 있던 때 동중학교 뒤편으론 신상리라는 마을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호수공원이 생기고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변 씨에 의하면 부개동 토박이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부개동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벽돌공장도 빼놓을 수 없다. 변씨는 “현 주공6단지에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 말까지 대규모 벽돌공장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로 컸죠.”라고 전했다.

때론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10여 년 전 사라진 송신소는 마을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변화였다. 현 푸르지오 아파트 자리에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무선기지국이 있었는데 마을 곳곳에도 거미줄처럼 송신탑이 있어 불편함을 감수했다고 한다.

부개역 생기면서 사통팔달 동네

그러나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변화는 부개역이다. 70년대 중반에 생긴 부개역은 생활의 편의를 가져다주며 발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역을 중심으로 동이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부개동은 현재 순환도로와 가깝고 서울과 부천 등 타 지역과의 접근성이 쉬워 교통의 요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지숙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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