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두레정신으로 나누고 보듬었던 마을 사람들

-[연재 ②] 우리 동네 이야기 - 두레농악의 마을 삼산 1동-

2012-04-23  <>

인쇄하기

두레정신으로 나누고 보듬었던 마을 사람들

서쪽으로 갈산동, 북쪽으로는 경인고속도로를 경계로 계양구와 부천에 인접해 있는 삼산동. 1980년대 초 아파트가 생기고 이후 택지개발이 이루어지기전까지는 온통 논과 밭이 펼쳐졌던 곳이다. 좀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산동은 ‘후정리’와 ‘영성미’라는 두 개의 마을이었다. 영성미는 1914년 이전 영성산 밑에 생긴 마을이라 영성미라 불리었다. 제방을 쌓고 남은 흙이 마을입구에 있어 흙터머지, 또 영성산 줄기 끝머리에 있던 바위 이름을 따 벼락바위라고도 불렀다.

마을 토박이 신현명(74·삼산1동) 씨는 “1950년대까지 약 1백 여 가구가 모여 살며 농사를 지었다.”라고 전한다. 농업이 밑바탕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상부상조 정신이 남달랐다. 신 씨는 “일꾼들이 풍물을 치며 들로 나갔습니다. 들에 가서는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며 일을 했고요. 논에서 김을 맬 때 풍물놀이를 했었죠.”라며 삼산 두레농악을 설명했다. 삼산 두레농악은 마을의 여러 행사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신 씨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은 질병을 없애고 맑은 물만 나오라는 의미에서 마을에 있던 우물을 청소한 후 우물 앞에서 고사를 지냈는데 고사가 끝나면 덕담과 함께 풍물이 이어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도당제도 지냈는데 도당제는 조용히 치러졌던 만큼 농악은 연주되지 않았다. 현재 도당제를 지냈던 자리엔 고가가 들어서 있다.

마을을 걷다보면 삼산동이 농사가 활발했던 지역임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경인고속도로 아래 뚫린 토끼굴이 그것인데 토끼굴은 부평에서 계양구를 넘나들며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들어준 통로였다. 예전엔 경운기나 마차가 지나다니던 통행로였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이 통행로를 이용하고 있다. 동네와 동네를 이어주던 다리도 있다. 후정리부터 영성미로 이어지는 큰 외길(현 후정동로)은 농로였는데 그 길(수로 위) 위에 1950년대까지 나무와 흙을 이용해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져 있었다. 그러다 1976년에 다시 재건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통문화 토대위에

미래형 신거주 중심지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전통을 이어오던 삼산동은 현재 신거주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타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농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올 5월에는 후정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한 삼산도서관이 개관될 예정이다. 아파트 단지 밖에 형성된 공원은 둘레 길과 비슷해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마을을 중심으로 계양구까지 3km 정도 이어져 있는 서부간선수로를 생태습지하천으로 조성 중에 있으며, 산책로도 정비해 금년 말 완공예정이다.

김지숙 명예기자

목록

자료관리 담당자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
  • 담당팀 : 홍보팀
  • 전화 : 032-509-6390

만족도 평가

결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