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현대사 속의 부평
--
2013-09-26 <>
역사의 아픔 딛고 경제성장의 견인차 구실
부평은 근대 이후 일본군 보급기지인 조병창과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 부대, 공수부대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수난을 겪는다.
애스컴은 1950년대 초반 이후부터 1960년대 중반, 부평공단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부평의 지역 경제와 주민의 생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이러한 배경으로 산업화를 거쳐 1960년대에는 부평지역이 공업단지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에 건설된 ‘부평수출공업단지’는 생산과 수출에서 큰 역할을 하며 인천과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 무렵 건설된 GMK(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자동차를 생산한다. 덕분에 주변에 부품생산업체가 함께 자리를 잡아 1970년대 부평지역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자동차공업의 살아있는 역사로 자동차의 국산화에 앞장선 선구자가 됐다.
1970년대에는 애스컴이 해체되면서 부평이 군사도시에서 산업과 상업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맞는다. 경인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경인벨트가 급속하게 도시화를 이룬다. 1980년대에는 대규모 택지가 개발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주거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빠르게 분화가 진행된다.
더불어 행복한 도시! 부평의 미래
부평구는 풍부한 인적 자원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으며, 경인 지역의 핵심도시, 문화인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산업과 첨단벤처, 풍요로운 문화와 예술, 지식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편리한 교통망과 쇼핑, 안락한 주거공간의 도시, 푸른 숲과 공원, 맑은 하천이 흐르는 자연 친화형 도시로 실현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이 자연과 사람, 이웃이 함께 공존하는 부평이 되도록 기틀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행복한 도시가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정리 김지숙 명예기자
<참고자료> 부평의 역사(부평사편찬위원회)
✽ 이번 호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구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