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화·예술의 자양분 고 이영유 시인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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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 16일 부평의 작은 식당가에서 고 이영유 시인의 3주년 추모행사를 했다. 그의 절친한 동료인 신종택(예술가), 서광일(풍물패 잔치마당 대표), 최영규(시인) 등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와의 추억을 함께 나눈 이날 행사는 가슴 뭉클한 따스함으로 다가왔다.
시인이자 연극연출가로 활동해온 고 이영유(59) 시인. 1950년 서울 출생으로 건국대 국문학과 졸업했다. 연극 연출가로 출발한 그는 1982 <우리세대의 문학>에 시 ‘유혹이냐 복음이냐’를 발표하며 등단. <한글세대 시인과 시>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검객의 칼끝』,『영종섬 길』,『그림자 없는 시대』와 유고집으로『이영유 희곡집』과『나는 나를 묻는다』시집 등이 있다. 그의 시는 도시적 감수성을 지닌 ‘도시이야기 시’였다. 그러나 과격하지 않고, 도시인들의 쓸쓸하고 적막한 삶을 매우 독특한 표현기법, 이를테면 패러디, 속어, 유머러스한 표현 등으로 담아냈다.
제상을 손수 장만한 서광일 씨는 “이영유 형의 예술, 문학세계는 인천문화의 자양분이었다. 그는 매우 조용한 성품이지만 속으로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으로 끝없이 그 무언가를 찾아 ‘판’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새’, ‘수업’, ‘의자들’, 등 2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고 충북 영동 자개예술 촌 총감독 등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의 기획ㆍ연출가로도 활동했다고 전했다.
2005년 봄 그는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경과가 좋아 건강을 회복할 줄 알았는데 겨울로 들어서면서 간암으로 전이된 것이 발견되었다. 조직 검사 결과 신경세포 암이라는 불치의 희귀 암 이었다.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았다.
그는 “나는 암이다!”라고 외치며 병마에 시달리면서 암을 직접 겪고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보이고, 세상과 인생이 새롭게 보인다는 시를 썼다. 삶이 다르게 보이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이나, 또한 그 모순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그. 많은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하고 2006년 2월 그는 날개를 달고 지하의 뿌리로 돌아갔다. 자유로웠던 영혼 고 이영유 시인. 그곳에서 진정 자유하기를.

3주년 추모회 계기로 ‘시의 숨결’ 부활 기대
고인은 16년 동안 인천에서 살면서 10년 넘게 부평 문화발전을 위해 애를 썼다. 부평풍물축제위원을 시작으로 ‘부평사람들’ 편집위원으로 “시의 숨결” 시낭송을 비롯해 척박했던 부평지역에 문화기반을 다지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시민문화운동’을 인천에서 처음 시도한 고 이영유 시인. 그의 삶은 가난했다.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이 아니었다. 시작 원고료, 이따금 연극연출을 하면서 받는 푼돈, 글짓기 대회의 심사위원, 축제나 시 낭송회 등의 행사 기획 등에서 생기는 수입이 전부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처자식을 거느리고 사는지 신기해했다. “3-4개월 동안 십 원 한 장 없이 살았다” 밝게 웃으며 전하던 생전 일화 한 토막.
그는 사람들에게 자유주의자면서도 현실주의자, 그러나 이 사이를 괴로워하는 낭만주의자로 기억된다. 이영유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애주가지만 폭음을 하거나 주정을 하는 법이 없는 사람, 주머니는 늘 비어있었지만 영혼은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추모회에서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지인들이 뜻을 모아 그가 생전에 이뤄놓았던 “시의 숨결” 시낭송회를 부활시키자는데 뜻을 모았다. 4월 24일 저녁 7시 이태백(부평1동 소재)에서 첫 모임을 가지고, 이번 가을에 멋진 모습으로 ‘시의 숨결’이 부활하기를 기원하며 많은 이들의 참여와 관심을 부탁했다. 깊어 가는 가을밤에 퍼져나가는 ‘시의 숨결’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배천분 기자 chunbunb@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