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도 생로병사한다
-부평에서 사라진 극장들 … 지금은-
오래전 부평의 문화를 책임졌지만 지금은 사라진 극장의 흔적을찾아 그 안의 추억과 현실을 바라보자. 문화도 길거리도 태어나고 소멸된다.
⊙ 유통점으로 바뀐 백마극장
년, 산곡동 근방에서 백마극장을 물었더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극장 없어요”라는 답을 들려준다. 백마극장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백마극장을 찾아 산곡동을 걸으면 근대와 현대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한쪽은 재개발을 바라보는 곳이고 대로변 밖을 바라보면 고층 아파트가 햇빛에 눈부시다. 하지만 추억은 영원해 백마극장에서 상영한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의 눈빛과 단체 관람으로 본 ‘선생님에게 사랑을’에서 루루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벤허’의 마차바퀴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현재 유통점으로 변한 백마극장은 이곳에서 상영했을 것 같은 포스터의 벽화로만 그 흔적을 전할 뿐이다. 이곳도 조만간 재개발이 된다고 하니 얼마 후면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쇠퇴했지만 백마극장을 비롯 산곡초등학교 근처와 백마시장 일대는 옛 백마장의 정겨움이 남아있는 마지막 장소다.
⊙ 부평극장&금성극장
세대들에게 부평에서 대표적 약속 장소는 부평역을 중심으로 대한·부평·금성극장 그리고 진선미예식장과 문화예식장이었다.
문화의 불모지라고 말하던 부평이었지만 이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서 문화의 갈증을 해소할 수도 있었다. 복잡한 부평시장 안을 돌아가면 그곳에 극장이 두 개나 있었다. 바로 옆에 나란히 불어 있어 라이벌이었던 금성과 부평극장이 문화에 대한 허기를 달래줬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부평 공단에서 여공들은 주말이 되면 짝을 지어 영화를 보러 왔고 학생들은 사복을 입고 몰래 영화를 보던 곳이다. 입석 151석까지 합하면 총 1천 석이 넘었던 극장에는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전영록이 나오는 ‘돌아이’를 상영했고, ‘우뢰매’와 ‘슈퍼홍길동’ ‘영구와 땡칠이’ 같은 굵직한 어린이 영화를 비롯해 ‘로보캅’이나 ‘코만도’ 같은 할리우드 대작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5~6년 전, 복합상영관의 등장으로 두 개의 극장은 문을 닫는다. 추억의 인플레이션은 새로운 문화의 거리를 만들며 아직도 이곳을 중심으로 부평의 문화는 숨 쉰다.
⊙ 대한극장은 복합상영관으로
한 편 당 관람료가 50원이던 시절 부평역 앞에 위치한 대한극장은꿈과 낭만의 공급처였다. 1962년 개관한 이후 현재 3개관 400여 좌석을 보유하고 있다. 사춘기 시절 데보라 카의 맑고 푸른 눈을 잊지 못하게 했던 ‘미라클’을 보면서 잠시 수녀를 꿈꾸기도 했던 추억의 장소였다.대한극장 김운봉 대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한극장이 아직도 부평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며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도 상징처럼 보여주듯, 부평하면 대한극장을 떠올려 극장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옛 극장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어떤 문화의 꽃이 피어날지 아니면 그냥 잊혀져 갈지 모를 일이다.
이혜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