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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우리 가족 특별한 새해맞이-

2009-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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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가고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아 여기저기서 희망을 말하기도 하고 적지 않은 걱정도 드러낸다. 지난해 경제 한파 속에 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새해를 맞이했을까? 핵가족이 대세인 요즘. 특별함으로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가족들이 있다.
 

박사가운 입고 새해 차례지내는 김오우 박사

   명절과 부모님의 기일에 이색의상을 갖춰 입고 제사를 모시는 가정이 있다. 삼산1동 동남 아파트 김오우(59) 씨는 어릴 때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깨끗한 한복을 차려입고 제사를 모셨고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렸을 때는 혼수복인 한복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냈다. 여기까지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1986년 이후 지금까지는 박사가운을 갖춰 입고 기제사와 명절제사를 모시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옛 선비는 반드시 선비의관을 갖추고 선비로서의 예를 다했고, 오늘날의 박사는 박사로서의 가운을 갖춰 입고 제사를 모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노심초사 길러주신 부모님의 공을 보답하려는 첫 번째의 마음가짐이라고 덧붙인다.
예전의 종교행사와 정치행사(궁궐)에서는 반드시 제주에 맞는 의관을 갖추었다. 박사가운은 돈이나 권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선비나 랍비(율법학자)로서의 자격과 명예를 보여줌으로 자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 김 박사의 확고한 믿음이다.
“가정이든 나라든 잘 꾸려나가려면 제정과 정치를 잘 해야 가족과 온 백성이 평탄하게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엄숙한 날에는 자신에게 맞는 의관을 갖춰 입음으로써 정중한 예와 정성을 다하는 마음자세가 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 하나 “앞으로 1~2년 후면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아들과 함께 박사가운을 갖춰 입고 제사를 모실날도 머지않았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101살 할아버지의 설날은 동네잔치
홍윤의·박귀임 부부

   요즘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100세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다. 부평구 십정2동에 사는 홍윤의(101) 할아버지와 박귀임(89) 할머니는 결혼 70년차 부부다. 이들은 69세 장남 진수씨를 중축으로 30여명의 대가족이 모여 명절이면 잔칫집을 방불케 하고 있다.

   1908년생인 홍윤의 할아버지는 우리나이로 101세,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와 할아버지와 일흔 해를 함께 보냈다. 화약기사 1급 기사인 할아버지와 살림밖에 모르는 5남매를 잘 키웠고, 증손주까지 30여명의 대가족을 이뤘다. 할머니는 지금도 할아버지 건강을 손수 챙길 정도로 부부애도 돈독하다. 장수의 비결에 대해 할아버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지만, 과식은 절대 하지 않고, 인삼을 자주 복용한 게 눈에 뜨인다. 특히 부부간 다툼이 없는 너그러운 성격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한다. 할머니는 자녀의 효도를 비결로 꼽을 정도로 이들 5남매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4대에 걸쳐 31명의 일가를 이룬 홍 할아버지 댁의 명절 잔치는 동네에서도 유명하다.
“저 댁은 명절마다 잔칫집이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어~!”라고 이웃에서 전한다. 차례 지내는 날이며 가족들은 모두 한복을 입는다. 30평 남짓한 할아버지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 그러니 아이들은 밖에 나와 뛰놀고, 마당에선 윷판이 벌어진다. 집안 잔치는 곧 동네잔치로 번진다. 홍 할아버지는 다가올 설을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살아 있어서 그 좋은 걸 볼 수 있는겨, 살아 있으니까 말이여….”
 

“한국 아줌마 다 됐어요” 빌마타타원씨의 설날

필리핀 빌마타타원(37) 씨는 올해 설날엔 남편의 첫 제사를 지내야 한다. 결혼 10년차 되던 지난해 남편을 잃고 말았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건강하던 남편이 임파선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린 그녀 옆에는 어린 세 자녀와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만 남아있었다.
우리말도 익숙지 않은 한국 땅에서 외국인이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생활고에 직면했지만 아이들을 키워야하고 노모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무작정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빌마타타원 씨가 남편을 만난 건 같은 종교생활을 하면서였다.
두 살 차이로 무척이나 부부애가 좋았다고 시어머니는 김진경(70) 씨는 전한다.
 
   결혼 후 아직까지 문안인사를 할 정도로 효심이 지극한 것에 놀라울 뿐이란다. “물 컵 하나도 쟁반에 받치지 않고 가져오는 적이 없을 정도죠. 형제간 우애도 나무랄 데가 없어요” 시모는 젊은 나이에 혼자된 외국인 며느리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참 많다. 노인복지관에서 밥을 짓는 일부터 외국인취업센터에서 미용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그녀는 한 달에 3일은 봉사를 위해 시간을 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십일조를 하듯 봉사를 한다는 빌마타타원 씨.
남편이 가장 생각날 때는 가족통합교육에 참가해 아내의 발을 씻겨주던 때라며 빙그레 웃는다.

이혜선 기자
2hye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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