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작가가 들려주는 부평 스케치-끝
-산타를 기다리며…
-안선모(동화작가·인천연수초등학교 교사)-
3세기 경 자선가 성 니콜라스라는 사람이 밤거리를 지나다 가난한 집에 금화 몇 닢을 넣어주면서 유래되었다는 산타클로스. 그 후 세월이 흘러흘러 1822년, 산타클로스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사람들 앞에 등장했다. 지금처럼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들어온 곳은 아마도 훨씬 후가 아닐까 싶다.
미군부대가 있어서 미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던 부평사람들에게 산타클로스는 더 가까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적, 어느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미군부대에 다녔던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먼 나라 미국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동그란 플라스틱 원판에 송송 구멍이 뚫려있고, 나무 모양의 색색가지 말을 옮기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면서 건너편 지점까지 빨리 가는 놀이)을 받아들고, 우리는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색깔도 신기하고 모양도 신기한 장난감.
“이게 뭐지?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처음 받은 장난감, 내 소유도 아니고 우리 집 소유의 장난감. 그 장난감을 가운데 두고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아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아이들은 참 좋겠다. 해마다 12월이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으니.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는 걸까? 너무 멀어서 못 오는 것일까?’
겨울이면 아랫목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불렀던 노래들과 손놀이가 생각난다.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구리구리구리구리 가위바위보!”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의 뒷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고, 진 사람은 어느 손가락으로 찔렀는지 맞힌다. 이 놀이는 긴 겨울밤을 우리를 심심치 않게 해 주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미국이 준 우유가루를 받아먹었고, 노란 옥수수 빵을 먹었다. 그때 우리의 산타는 그 미군들이었다. 반미감정이 들끓는 요즘으로 보면, 자존심 상할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 시대에 우리는 그들이 준 식량을 먹고 자랐다. 그것은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한 풍경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베풀 차례다. 우리보다 부족한 나라에 식량과 물자를 주어, 그들의 산타클로스가 될 생각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산타클로스는 아무도 모르게 한밤중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고 굴뚝을 이용해 선물을 나눠준다. 그런 의미를 되새겨, 주는 자의 오만함을 버린다면 누구나 산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는 산타클로스들. 휴지를 줍고, 놀이터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줍는 사람들, 점심을 굶는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사람들 또는 단체들,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남을 도와주는 산타클로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인가.
아, 이 겨울에 부평에도 아름다운 산타가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