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작가가 들려주는 부평 스케치
-삶의 샛별이 되어준 금성극장-
○○시네마, ○○박스……. 요즘 대형영화관들의 이름이다. 이름도 그럴싸하지만 시설 또한 최고다. 여름방학 동안 모처럼 만에 영화관을 찾으니 내 모습이 꼭 촌사람이 서울 와서 길 못 찾아서 헤매는 꼴이다. 매표소 찾는 것도 일이고, 들어가야 할 상영관을 찾는 것도 나를 당황하게 한다.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영화에 대한 추억, 그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어두운 하늘을 비춰주는 샛별을 바라보는 일과 똑같다. 금성극장- 그곳은 삶에 찌는 이들에게 샛별이 되어준 곳이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했던 그 시절,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마을 아낙들은 철도 길을 따라 금성극장으로 향했다.
“분명 영화 보다 졸려서 잘 텐데……. 오빠들과 집에 있어라.”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집이 똘똘 뭉친 얼굴을 반짝 들고, 초롱초롱 눈빛으로 어머니 치맛자락을 꼭 잡았다.
어머니는 비록 극장가는 길이 멀긴 해도 나를 데리고 가는 게 별로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돈을 안 내도 되는 나이였다. 달빛 하나 비치지 않는 깜깜한 길을 걷다보면 발밑에서 자글자글 자갈돌이 발바닥을 간질인다.
두 줄 길게 나 있는 철도를 따라 한참 걸어 금성극장에 닿았다.(그때 부평에는 부평극장과 금성극장이 있었는데 금성극장에 갔던 기억만 난다. 아마도 금성극장에서 상영하는 프로가 아낙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기도(극장 들어가는 곳을 지키는 사람)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난, 얼른 엄마 치마 뒤로 가 숨었다. 혹시 돈 내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기도 아저씨는 돈 내라는 소리는 안 하고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른들도 무서워서 오줌 지리는 귀신영환데 저 꼬맹이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기도 아저씨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나를 들여보내준다. ‘분명 저 꼬맹이는 영화를 보다가 소리 지르고 뛰쳐나올 거야.’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난 어른들보다 더 씩씩하게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사실 영화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어른들은 눈을 가리고, 머리를 숙이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깜깜한 밤길, 돌아오는 길 내내 눈을 말똥거리며 나는 영화 속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나쁜 일을 하면 귀신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는구나. 난 절대로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영화를 보고 온 다음 날이면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들은 지난 밤 영화 보았던 일을 깔깔거리며 얘기한다. 그러면 어느새 그녀들의 어깨위에 내려앉았던 피곤이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영화는 모든 수고로움을 견디게 해 주는 삶의 활력소였다. 깜깜한 길을 비춰주는 샛별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언제 극장에 가려나 날마다 기다렸지만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정도였을까? 그만큼 먹고 사는 게 벅찼던 시대였다.
지금은 인터넷에 들어가 따각~ 클릭 한 번에 쉽게 표를 살 수 있고, 가까운 곳에 영화관이 즐비하다.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금성극장 자리에는 입맛을 돋구어주는 음식점들로 가득하다.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면야 그 무엇이 들어선들 어떠하리.
안선모(동화작가·인천연수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