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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작가가 들려주는 부평 스케치

-어머니의 양귀비-

2008-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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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동안 건강종합 검진을 받으려고 인터넷에 들어가 ‘부평성모병원’을 검색했다. 1955년에 생긴 부평성모병원, 53년의 역사를 가진 부평성모병원은 인천성모병원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부평성모병원이 인천성모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나를 살려준 부평성모병원. 다섯 살 때 이름 모를 병으로 거의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나를 살린 곳은 바로 부평성모병원이었다. 그때 나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다 날렸다는 아버지 말을 들으며 내 어린 마음에도 병원이란 데는 우리 같이 가난한 집 자식들은 얼씬거리지 말아야할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 때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웬만한 병은 자가 처방으로 해결하거나, 기껏해야 하나 둘 있는 약방에 가서 증세를 얘기하곤 약을 사다먹곤 했으니까.
 뜰이 있는 집에 이사 오자, 어머니는 화초들을 옹기종기 심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양귀비였다. 어머니는 배앓이를 하는 자식에게 말린 양귀비를 한 주전자 끓여 주셨다. 연한 갈색으로 우러나온 그 물이 얼마나 먹기 싫었는지.
‘나도 알약을 먹고 싶다. 우리도 돈이 있으면 약방에 가서 약을 사다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코를 싸쥐고 꼴깍 그 물을 목구멍에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약방에 가서 약을 마음껏 사다먹을 수 있는 집이 과연 몇 집이나 되었을까?
지금은 어떤가. 한 집 걸러 병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새로 병원이 생기곤 한다. 게다가 의료보험 제도가 있어 그다지 크게 경제적 부담감 갖지 않고 병원에 드나들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양귀비 한 포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비실비실 제대로 자랄 것 같지 않았지만, 정성을 기울여 키웠더니 꽃이 다섯 송이나 피어났다.
“양귀비 기르면 안 되니까 소문내지 말아요.”
양귀비를 준 사람은 내게 쉬쉬하며 말했지만 나는 주위에 크게 자랑하고 싶었다. 활짝 피어난 양귀비를 사진기로 찍어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었다.
“제가 키운 양귀비예요. 참 예쁘죠?”
그러면 사람들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이거 아편 만드는 거라서 키우면 법에 걸리는데…….”
나는 아편이 뭔지도 모르고, 아편을 만들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람! 양귀비꽃이 소리 없이 지던 날, 나는 그 녀석을 뿌리째 캐서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거꾸로 매달았다. 거꾸로 매달려 시들시들 말라가는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언젠가 내 자식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말린 양귀비를 달여 먹이리라.’
 누군가 그건 법에 걸리는 거라고 말한다면? 난, 내 유년을 건강하게 해준 어머니표 사랑의 약을 만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양귀비를 달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양귀비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 오랜 시간 달이는 것보다, 후닥닥 병원에 달려가 진료 받는 게 훨씬 빠르니까.
유년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쓰디쓴 연갈색 물, 그 물이 그립다. 아니, 그 시절이 그립다.
안선모(동화작가·인천연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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