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옛 고을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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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로
부평역에서 부평읍내를 거쳐 김포로 가는 도로를 “김포로(金浦路)”라 하였다.
1940년 부평지역이 인천부에 편입되고 부평역에서 수도사거리까지 길을 넓혔다.
광복 후, 이 도로를 “부평로”라 하고 계산동까지 크게 넓혔다. 부평구와 계양구가 나뉘었으므로 현재의 부평로는 부평역에서 경인고속도로까지를 뜻하게 되었다.
“부평로”는 부평의 중심도로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 대정로
시장역오거리에서 굴다리오거리 사이의 길을 “대정로”라 한다. 부평역전 일대가 옛날에는 대정리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살려 “대정로”로 하였다.
■ 백마장
신곡동 부근 사택 밀집지대를 흔히 “백마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백마장은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을 백마정(白馬町)이라 했던 것이 변천한 것이다.
■ 마장길
산곡3동을 관통하는 길로 부평삼거리에서 신촌사거리, 원적산사거리를 지나 새벼리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새로 생긴 큰 길이다. 청천동을 관통하는 길이라 하여 “청천로”라 했다가 “마장길”로 바뀌었다. 이것은 옛날에 산곡동, 청천동, 효성동 일대를 “마장면(馬場面)이라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길주로
대우자동차 공장 남쪽으로 부평경찰서 앞을 지나가는 도로를 “길주로”라 한다. 이 도로는 동쪽으로 부천, 서쪽으로는 서구를 넘어 염곡로 교차점까지 이어질 예정인데, 고려 충렬왕 때 “부평을 길주라 하였기 때문”에 이 이름을 살려 “길주로”라 하였다.
■ 후정리
후정리는 1789년(정조17) 작성된 『호구총수』 시절부터 있던 마을이름이다.
갈산 밑에 갈월리마을이 있고, 우물을 파고 마을이 생겼다. 등성이“뒤에 큰우물”로 인하여 마을이 생겼다 하여, “뒤우물 또는 후정리(後井里)”라 하게 된 것이다.
■ 부개동
부개동은 본래 부평군 동소정면 마분리(馬墳里) 지역으로 “말무덤”이 있어 “마분”이라 하였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올 때, “부평이 처음 시작되는 곳(열리는 곳)이라서 부개동”이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뒷산인 “부개봉(富開峯, 復蓋峯)”에서, 또는 “산 위에서 볼 때 산 앞이 넓게 열려 있어서 부개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 동수동과 동소정
동수동 지역이 부평6동으로 분동되기 전에 ‘부평2동 동수동’이었다. 동수동은 영조 때의 『여지도서』부터 “동소정면(同所井面)”으로서 흔히 “동수재이”로 불러왔다. 그러나 “동소”가 언제 “동수”, 또한 한자로 “동수(東樹)라 표기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전거(典據)는 없다.
『부평사』제2권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