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지역의 설화
-우물을 파지 못한 항굴마을-
일신동에 항동 마을이 있었다. 현재 부개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남쪽으로 등성이 너머에 있는 마을이었다. 형세가 마치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항동 또는 항굴로 불렀다.
이 마을은 우물을 파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50호 이상이 살면서 우물이 없는 마을. 그 이유는 마을 형세가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밑을 뚫으면 침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동구 밖에 우물을 파놓고 그 물을 길어다 먹었다.
남향이라 따뜻하고 아늑하여 살기 좋다고 여겨 찾아온 사람들은 우물을 팔 수 없다는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엉터리 핑계를 대고 외지 사람들을 거부하는 마을이군.”
그들은 투덜거리며 떠나갔다.
참지 못하는 것은 마을 젊은이들이었다.
“근거도 없는 미신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는 격이지요. 나는 불편을 참고 살 수 없어요.”
마을 원로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예로부터 전해오는 금기는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일세. 우물을 파서는 안 되네. 불편하더라도 참아야지.”
그러나 청년들이 점점 더 불만을 갖기 시작하고 누군가가 자기 집에 몰래 우물을 팠다.
“참으로 물맛이 좋군. 이렇게 시원한 물을 얻을 수 있는데 공연히 어리석게 살았지.”
그것이 조용히 입소문으로 퍼지고 또 다른 사람이 우물을 팠다. 그리고 마침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 합방이 되고 미신타파라 하여 전통 신앙을 억압하게 되었다. 그런 바람을 타고 사람들은 앞 다투어 우물을 팠다.
“아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이 마을이 침몰하는 배처럼 무너지고 말텐데.”
원로들이 탄식했으나 소용없었다.
몇 년 뒤 뜻밖의 일이 들이닥쳤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일본인 직원이 와서 말하였다.
“이 마을은 모두 이사 가시오. 총독부 명령이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마을인데 왜 떠나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가졌습니까?”
일본인 면서기는 들고 온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서부터 무넘이고개 너머까지 일본 군대가 주둔하게 됐소. 명령을 거부하면 경찰이 체포할 거요.”
“농사짓던 땅은 어쩌구요?”
“총독부 명령이니 무조건 나가야 합니다.”
항굴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모여 앉았다.
“참으로 큰일 났습니다. 모두 이사 가라니 어쩝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살던 땅에 군대가 온다니 이를 어찌합니까.”
사람들의 탄식을 듣고 원로들은 한숨을 쉬었다.
“힘없는 백성들이 어찌하는가, 왜놈들 감옥에 끌려가면 죽도록 맞아 살아나오지 못한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눈물로 이삿짐을 쌌다. 나라는 망했고 침략자 일본 군대가 주둔한다는데 저항할 사람은 없었다.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달구지와 손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은 정든 마을을 떠났다.
“정든 고향아, 잘 있어라.”
그들은 고향집과 텃밭을 뒤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때 누군가가 말하였다.
“혹시 그 때문일까요? 우물을 파선 안 된다고 했는데 앞 다투어 팠기 때문일까요?”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옛날의 전설에서 금하는 것처럼 우물을 팠고, 몇 년 만에 마을이 침몰하는 배처럼 사라지게 됐으니 말일세.”
『부평사』제2권 중 부평지역의 설화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