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과 악, 부와 빈, 양달과 응달, 절망과 희망…….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의 고향 부평이 갖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픈 역사와 비상과 발전의 역사를 동시에 갖고 있는 부평, 반짝이는 햇빛과 춥고 떨리는 그늘도 함께 갖고 있는 부평. 오늘은 그런 부평의 아픈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가 들어서면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한 곳은 그 주변이었다. 미군부대 앞에는 각종 오락시설과 유흥시설로 가득 찼고, 지붕 낮고 마당 깊은 집들은 너도나도 양공주들에게 방을 내주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나는 “얼씬하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수군수군 얘기를 나누었다. 누구 집 딸이 미군과 살림을 차렸다더라. 누구네 집 딸은 미군들이 드나드는 술집에 나간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이 무성해져 바람을 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전해졌다.
그러면 사람들의 얼굴에 안쓰러움과 동정의 빛이 가득 했다. 그런데 그 딸이 돈을 많이 가져다주어 살림이 폈다더라, 미제 물건을 한 보따리 갖고 왔다더라, 그 딸 덕분에 남동생들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더라 등등의 얘기가 나돌면 다시 사람들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야릇한 동경의 빛이 조심스럽게 새어나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좋은 물건들이 넘쳐날까? 미제. 그 당시에는 “똥도 미제가 좋다더라”는 말이 유행이 될 정도였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는 중학교 친구를 만나러 미군부대 앞 동네로 놀러갔다. 전날 결석한 친구에게 숙제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약간 으스스한 마음으로 친구네 집에 들어섰는데 마당 수돗가에서 까르르 깔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친구네 집은 ‘ㄷ’자 기와집으로 제법 규모가 컸다. 토요일 밤을 미군들과 술 마시고 춤추며 보낸 그녀들이 늦은 세수를 하며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와, 참말 예쁘다!”
아침 햇빛 속에서 세수 대야에 물을 떠놓고 까르르 웃어대는 그녀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내가 상상했던 양공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언니들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말간 얼굴, 가지런히 빗어 넘긴 긴 생머리, 입가에 조롱조롱 매달린 미소.
그때까지 내가 생각한 양공주는 하얀 분을 덕지덕지 바르고, 입술은 빨갛게 칠하고, 짧은 치마를 아슬아슬하게 입은 그런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며 미군과 상대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함께 살던 미군에게 버림받아 인생을 망치고 평생을 술집을 떠돌아다니는 사람, 다행히 좋은 미군을 만나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녀들은 결코 우리들이 멀리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가까이에서 우리가 다독여주었어야 할 우리의 언니들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미군부대는 부평을 떠났고, 양공주도 사라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리라. 미군부대는 떠났지만 제 2의 제 3의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우리의 언니들이 상처를 보듬으며 살고 있으리라.
미국산 쇠고기반대 시위가 거센 요즘, 부평의 아픈 상처를 떠올려본다. 과연 그들만의 선택이었을까? 군대와 국가가 우리 언니들을 그곳으로 몰아세운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희생된 언니들, 그들은 모두 우리 가족이며, 친척이며 이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안선모(동화작가·인천연수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