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낸 부평
-시인 한하운의 흔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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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1호선 동암역에서 백운역으로 이어지는 국철 변엔 야트막한 소규모 공장들이 줄을 잇는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공장지대보다 조금 높은 곳엔 몇 년 전 지은 고층 아파트가 내려 보고 있다. 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오래 전 이곳에서 자활을 하던 이들이 공장을 하며 정착해있었던 곳이지…”라고 공장지대를 손짓한다.
시인 한하운(1919~1975). 그가 그곳에서 살았다.
그의 56세 삶 절반은 절망, 고독과의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였던 그가 1945년 부평구 십정동으로 들어와 일생을 살았다. 그러므로 한하운 시인의 삶은 부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평과 특별한 관계임에도 부평 어디서도 그 역사를 찾을 길은 없다.
그는 부평구 십정동 일대에서 자활사업에 헌신하면서 시 작업도 활발했다. 시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때 쓴 시 `보리피리'와 `파랑새'는 현재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히고 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릴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 )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전문)
그가 정착했던 현재의 부평구 십정동은 물론 인근의 청천동도 그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시인으로서 또 사회사업가로서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어려운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낸 시인 한하운. 그가 부평에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냇음을 후손들에게 이젠 알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