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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지역의 설화

-청천동 - 가정동 잇는 안아지고개의 네가지 전설-

2008-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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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아지고개는 부평구 청천동과 서구 가정동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의 이름에 관해서는 그럴 듯한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기러기가 날아드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청천동 동쪽에서 바라보면 서구 가정동 앞바다에서 기러기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말하였다. “기러기가 날아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군.”
그 때부터 한자의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기러기가 내려앉는다’는 뜻으로 안하지(雁下地)란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와 관련된 전설이다. 이성계는 새 도읍지를 정하려고 무학대사를 시켜 적당한 장소를 찾게 하였다. 무학대사는 한양을 거쳐 부평에 왔다.
“이곳은 들이 넓고 비옥하여 새 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하군.” 무학대사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곧 탄식했다.
“아, 참으로 아깝군. 풍수의 이론으로 보면 이곳에 백 개의 고개가 있어야하는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아흔 아홉 개밖에 없지 않은가.”
 
 그의 말에 따라 그 때부터 아흔아홉 번째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것이 안하지로 바뀌었다.
인천과 부평을 경계하는 원통현도 이 전설과 연관하여 또 다른 뜻이 있다. 무학대사는 탄식하였다. “아, 고개가 아흔아홉 개밖에 없으니 원통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원통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김안로의 운하 사업과 관련된 전설이다. 그 때 운하를 만들면서 세 번째 시도로 굴포천에서 현재의 청천동 청천천과 연결시켜 수로를 깊이 팠다.
“여기도 실패하면 그 때는 끝이야. 어떻게든 성공해서 전하와 조정의 걱정을 덜어야 해.”   그는 일꾼들을 독촉해 청천천을 깊이 팠다. 그 때 깊이 판 청천천이 고개 안에 있는 형상이 되었던 터라 ‘고개 안에 있는 낮은 땅’이라는 뜻으로 ‘내하지(內河地)’라 했는데 그 말 중 한자의 안내(內)자가 우리말로 변해 안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는 주막에서 술을 파는 여인의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다. 1884년 조선 조정은 현재의 원창동 갯말(한자음을 빌어 포리(逋里)라고도 했다)에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포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 전조창이라는 세곡 보관창고를 지어 세곡을 보관하였다가 때에 따라 필요한 만큼 우마차에 싣고 한양으로 갔다.
 
 우마차 짐꾼들은 현재의 가정동과 청천동 사이에 있는 고갯길을 넘으면서 한 번씩 쉬며 지친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자신들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그들이 쉬고 간 주막에 ‘안아지’라는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다.
“안아지, 그대는 참 아름답소. 그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오.” 사람들은 땀을 닦으며, 막걸리를 마시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아지라는 연인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주막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한 곳의 땅 이름을 두고 이렇게 네 가지 전설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 만큼 중요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고개였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서울대학교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립 도서관인 규장각 도서 중에 옛 지도가 있는데 그것에는 안하지 고개가 ‘구십현(九十峴)’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실려 있다.

- 『부평사』 제2권 中 부평지역의 설화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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