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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그곳에 가면 농장이 있다?

-역사는 흘러도 이름은 여전히 ‘농장’-

2008-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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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는 예전 경인농장과 사진(우) 경인농장 현재 모습
 
 부평엔 분명 농장이 아님에도 농장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백운역 부근의 ‘화랑농장’, ‘경인농장’ 부평공동묘지 부근의 ‘부평농장’, 청천동 592번 버스 종점이기도 한 ‘청천농장’이 그곳이다. 모두 부평의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그 이름을 지켜 온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왜 농장이라고 불릴까?
 
 ‘화랑농장’은 한국전쟁 후 사회로 복귀한 제대군인 특히 경제적으로 자활이 어려웠던 상이용사들의 자활 터였다. 1955년 상이용사 출신인 김국환 씨와 진상구 씨의 주도로 산곡동에 화랑농장이 조성되었다. 화랑농장이 들어섰던 곳은 원래 구한말 장끝말이라 불리던 동네였다. 하지만 일제가 중일전쟁을 시작하면서 병기공장을 만들 때 이곳에 거주하던 20여 가구의 원주민들을 내쫓았고 마을도 사라졌었다.
 
 ‘화랑농장’은 미군기지터 일부를 환수 받아 설립되었는데, 이후 정부의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얼마 못 가 심각한 자금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1950년대 말 문을 닫게 되며 다시 폐허가 된 농장에 많은 외지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이곳은 농장이 아닌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주택들이 모여 앉은 전형적인 구식 주택가의 모습으로 급속하게 변하게 되었으나 일대를 아직도 ‘화랑농장’이라 부르고 있다.
 
 농장이 아니지만 ‘화랑농장’으로 불리는 그 이름에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쳤던 상이용사들의 슬픔과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농장이 된 사연도 각양각색
‘부평농장’과 ‘청천농장’, ‘경인농장’은 비슷한 환경에 처해진 사람들이 모여 일궈낸 농장이다. 원적산과 철마산에서 시작된‘맑은 내’라는 뜻의 ‘청천농장’이 시작된 것은 1950년 말이었다. 원적산 줄기를 올라가면 산중턱에 넓은 산골마을 있다. 이곳이 양계마을이다. 양계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서 양계마을이라 불렀다. 현재 ‘청천농장’은 인천시 자연공원인 원적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각종 운동시설과 자연 속의 휴식시설 등이 설치되어있다. 공업지역과 일반 주거지역이 혼재되어 있으며 청천1동주민센터 옆의 ‘도깨비시장’ 주변은 공동 주택지로 개발되었다.
 
 ‘부평농장’은 현재 인천가족공원(부평공동묘지) 부근의 소규모 공장 터전으로 변모했지만 예전에 한하운 시인이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천가족공원의 영향으로 많은 부분이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말하자면 청천농장, 부평농장, 경인농장은 당시 개간해 일군 농장이었다. 현재 부평에 사는 사람조차도 청천농장이나 부평농장 등을 전원농장이나 가든식 숯불갈비집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농장’ 이라는 그 낭만적인 이름에는 스스로 자활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삶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혜선 기자2hye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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