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자동차를 몰고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향한다. 부평역 로터리를 돌아 우체국을 지나면 곧 네비게이션 속 여자가 황급히 외쳐댄다.
“건널목입니다. 건널목입니다.”
그러면 난 활짝 웃으며 경쾌하게 대답한다.
“건널목? 지금은 없거든? 그러니까 조용히 해!”
황당한 둘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미군부대 앞을 지난다. 한국전쟁 후 오랫동안 주둔했던 미군부대는 길고긴 반환소송을 거쳐 이제 우리 국민들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군부대 앞에서 홀로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더니 지금 그 자리엔 아무도 없다. 미군부대 때문에 먹고 살았던 수많은 부평사람들. 그들 마음 속에 미군부대는 어떤 양상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피난민촌 하꼬방 바로 옆집에 살던 아저씨는 미군부대 식당에 다녔다. 아저씨는 20㎏짜리 밀가루 부대를 차곡차곡 모아 집으로 가져오곤 했는데 실상 그 속셈은 따로 있었다. 아저씨가 밀가루 부대를 모아 집에 들고 온 날이면 아줌마와 아저씨는 밀가루 부대를 거꾸로 들고 탁탁 털어댄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빈 자루에서 밀가루가 솔솔 나온다. 아저씨는 이 날을 위해 한쪽 귀퉁이에 밀가루를 살짝 남겨둔 것이다. 그 밀가루들을 반죽하여 아줌마는 가족들의 소중한 한 끼 식사인 수제비를 만들었다.
큰오빠를 낳고 6.25한국전쟁을 맞아 강원도 철원에서 이곳 부평으로 피난 와야 했던 나의 아버지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하우스 보이와 하우스 걸은 한국에 온 미군들 숙소를 청소하고 심부름도 하고 이것저것 잡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그래도 살기가 수월했다.
적어도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아버지가 어린 우리들을 남겨두고 군대에 불려 나갔을 때 우리 가족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석탄 장수를 했다. 철도역 선로반에 가서 미리 자루 서너 개를 맡기고 돈을 지불한다. 그러면 선로반 사람들은 인천발 기차 안에서 기차에서 때는 석탄을 자루에 부지런히 퍼 담는다. 그리고 기차가 삼릉쯤 지날 때면 석탄이 가득 담긴 자루들을 기찻길 옆으로 던져놓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달려가 그 자루를 받아 피난민 하꼬방까지 갖고 오는 것이다.
굴리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고 중간에 덜어서 팔기도 하고. 그런 일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석탄 갖고 올 테니 자고 있어라. ”하고 어머니가 나가신 날 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불을 끌어당겨 목까지 덮고 얼굴만 빼꼼 내밀고 온갖 상상을 하였다. 그러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그제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무사히 집에 오신 것이다.
“저러다 울 엄마 잡혀가면 어쩌지?”
어머니는 석탄을 훔친 게 아니라 정당한 값을 주고 산 거라고 하셨지만 내 어린 마음에도 그건 나쁜 일이고, 언젠가 꼬리가 잡히면 경찰서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만 석탄에 불을 지펴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찌개도 앉히고.
어떤 날은 아궁이에 들어간 석탄을 빼내어 꽁치를 구웠다. 지글지글 타는 석탄 소리와 함께 꽁치도 지글지글 익어갔다.
꿀꿀이죽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미군들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를 모아 끓여서 커다란 드럼통에 넣고 다니며 팔았다. 달착지근하고 온갖 재료들이 들어 있었던 꿀꿀이죽. 그것조차도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꿀꿀이죽을 먹다 담배꽁초를 발견했다는 이야기, 별의별 이물질이 나왔어도 우리는 그것을 사먹었고, 아무 탈도 나지 않았다. 투정을 부리기에 우리 뱃속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었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과 급식실에 내려가 점심을 함께 먹는다. 아이들은 먹기 싫다는 이유로, 먹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멀쩡한 음식들을 입에 대지도 않고 버리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교실로 돌아와 굶주렸던 옛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때의 굶주림을 잠시만이라도 기억해 달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배곯으며 살았기 때문에 현재의 너희들, 풍요로운 너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눈만 꿈벅거린다. 어디 먼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까만 석탄과 하얀 미군. 까만 석탄의 의미는 무엇이며, 하얀 미군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오늘도 미군부대 자리를 넘겨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안선모(동화작가·인천연수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