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
-나의 보호자는 할아버지-
2007-04-02 <>
우리 동네 초등학교에서 오늘 입학식이 있었다. 학교 교문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 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걸려 있고, 많은 어린이들은 기쁘게 입학하였다. 어떤 예쁜 아이가 할머니 손잡고 ‘팔딱’ 뛰면서 온다. 한 손은 할머니 손잡고, 또 한 손에는 새로 산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6년 전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았다.
기다리던 입학식 날 여덟 살 봄, 할아버지 손잡고 입학식에 갔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호주시고, 세대주며, 나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모든 것이 할아버지 존함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가족관계, 학적부에도 보호자는 할아버지로 되어 있었다.
그날 입학식 때 나보다 할아버지께서 더 성장을 하신 것 같았다. 중절모에다 안경을 쓰시고 윗도리에 검정색 반 만도를 입어셨고, 속에는 검정색 두루마기 한복 차림에 가죽구두에 지팡이를 짚으셨다. 나는 검정색 치마저고리에 앞에 고무달린 검정색 운동화에다 가슴에는 분홍색 梅반 마크를, 마크 밑에는 하얀 손수건을 저고리 앞가슴에 달았다.
그 때 일어로 우매(매화)반이 있었는데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무조건 분홍색 깃대를 보고 줄을 섰다. 그 때는 梅반(분홍색), 蘭반(보라색), 松반(초록색), 竹반(연두색) 네 반이 있었다. 깃발 색깔이 이러했다.
그러나 그때는 일제시대라 이름을 개명했기 때문에 나의 이름이 헷갈렸다. 집에서는 김부숙, 학교에서는 重光令子(시개미쓰레이코)였다. 집에서 많이 연습하고 또 불러보고 반복해서 내 이름을 외웠다. 대답도 “예”가 아니고, “하이”라고 해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아이는 한참동안 개명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썼다. 선생님께서 그 애 보호자를 불러서 개명하라고 다그치니까 그 애 어머니 말씀이 “얘가 둔해서 두 가지 이름을 쓰면 불러도 대답 않고 아무것도 못하니까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리고 입학식 때는 신입생 한 줄, 그 옆에는 육학년 학생이 한 줄 서서 손잡고 운동장 한 바퀴 돌고 교실까지 안내 받았다. 오래 기억이 남는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는 끝까지 우리들 모습을 지켜 봐 주셨고 하교 할 때까지 기다리시다 저의 손을 잡고 같이 집에 오셨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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