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편집위원칼럼

-직박구리의 오아시스-

2006-04-07  <>

인쇄하기

편집위원칼럼

편집위원칼럼

직박구리의 오아시스

삣삣삣 삐잇, 직박구리들이 난리가 났다. 아, 봄이구나,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짝을 찾느라 목소리가 커진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독약을 실은 차가 긴 호스를 꺼내 총처럼 나무에 들이대고 소독약을 분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무에 소독을 한다고 직박구리들이 긴급 연락을 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잠시 몸을 피해라. 멀리 떠났다 돌아와라, 삣삣삣 삐잇,”
“배고파도 참아라. 열매에 입대지 마라 삣삣삣 삐잇,”
말라빠진 열매를 먹으며 춘궁기를 보내고 있는 직박구리들에게 이보다 걱정스러운 속보가 어디 있을까 싶다.
직박구리들은 당분간 이 가혹한 비상시국을 잘 견뎌내야 할 것이다. 굵은 비가 한 줄금 쏟아질까 싶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라도 내려 약물을 씻어낸다면 경계경보 해제가 좀 빨라지리라.
“봄은 왔지만 침묵의 봄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울새 비둘기 언치새 굴뚝새의 우는 소리가 봄 밤을 새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새 울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판, 숲, 늪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모두 인간이 스스로 부른 재앙이었다.”
섬뜩하지 않은가. 침묵의 봄은 레이첼 카슨이 자연을 하나의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가한 충고이다.
레이첼 카슨은 DDT의 사용으로 새들의 생명은 물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태계를 파멸시킬 수 있다고 선언했다.
자주 가는 어린이도서관 뒤뜰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어느 해 여름, 벌레가 생겨 나뭇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벌레들의 먹성은 대단했다. 며칠 지나 보면 알에서 벌레들이 더 깨어났는지, 1령 애벌레가 3령 애벌레쯤 되었는지 나뭇가지 한 쪽이 드러날 정도였다. 결국 벌레는 잎맥만 남기고 나뭇잎을 완전 초토화시켰다.
가속페달을 밟은 듯 나뭇잎이 뭉텅뭉텅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도서관에서는 끝내 소독약을 치지 않았다. 감나무의 수난을 막기 위해 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는 일이 생태계의 흐름에 관여하는 일이란 걸 잘 아는 까닭이었다.
살충제 뿌려대는 작업을 최소화했으면 한다. 병든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나마 새가 살 수 있는 곳은 나무가 심어져 있는 아파트, 학교, 관공서, 빌딩의 작은 정원들이다.
눈곱만큼 남은 그들의 오아시스를 빼앗지 말자. 직박구리의 오아시스를 빼앗는다면 우리의 봄은 침묵하게 될 것이다. 우리 곁에 와서 수다스럽게 삣삣거리는 직박구리가 있다는 것, 고맙지 않은가.

<김미혜 편집위원>

목록

자료관리 담당자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
  • 담당팀 : 홍보팀
  • 전화 : 032-509-6390

만족도 평가

결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