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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할머니의 소원-

2006-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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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할머니의 소원

조용애 (산곡4동)

“예쁜아, 오늘 졸업했니? 고등학교는 어디로 되었니?”
나는 내 앞에서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던 여학생과 발걸음을 맞추며 말을 건넸다.
여학생은 웃는 듯한 입 모양만 만들고 대답은 고개로만 한 번 끄떡했다.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하지? 할머니는 지금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데.” 여학생은 내 얼굴을 살짝 곁눈질 해 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인지 확인해 본 것일까?
“예쁜아, 나하고 자장면 먹자.”
여학생은 또 고개만 옆으로 흔들고, 처음보다는 조금 많이 웃어주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입구의 큰 사거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할머니는 운동 삼아 가까운 이 상가를 놔두고, ××마트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면서 운동도하고 반찬거리도 사온단다. 오늘은 두부1모, 오이3개만 샀다.”
여학생은 내 손에 들린 비닐 봉투를 한 번 힐끔 쳐다봐주었다.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또 여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다가대며 “예쁜아, 할머니가 아침을 조금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
오랜만에 자장면 먹으면 참 맛있겠다. 그치. 우리 같이 자장면 먹자~앙.”
나는 여학생에게 애교를 섞어 떼를 썼다. 내가 예쁘게 보였는지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댁이 어디세요?” “나? 경남2차.”
“예쁜이 너는?” “여기예요.”
“아! 여기 경남1차 상가 2층에 자장면 맛있게 잘 하지?” 내가 여학생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 말 없이 따라 주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배시시 웃는 여학생의 얼굴을 마주한 나는 가슴이 뛰었다. 속으로 ‘나도 몰라. 하여튼 침착하게’ 라고 다짐하며, 자장면이 나올 때까지 얻어진 시간을 우리 둘이서 조금씩 쪼개어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204동 ××호에 살아. 딸하고 둘이 사는데 내 딸은 서른 살이 넘은 어른이야. 그런데 내 딸이 지금 너 같이 예뻤을 때 몹쓸 병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눈도 안 보이고, 두 세살정도의 애기 같은 짓만 하고 있단다. 내 딸이 중학교 졸업하는 날, 내가 꼭 자장면을 사 줄 계획이었는데.....”
나는 단숨에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 했는지 나도 내심 놀라서 웃어보였다. 예쁜이는 금새 눈물 방울을 하나 떨어뜨리고 휴지를 찾았다.
“예쁜아, 왜 울어? 할머니가 미안하게. 오늘은 이 할머니가 예쁜이 졸업축하도 해주면서 먹고 싶었던 자장면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날인데.”
그리고 할머니는 “내 딸이 내 곁에 살아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있는데. 예쁜이는 몇동에 살아?” “107동이요.”
“형제는?” “없어요.”
“엄마가 직장에 다니시나?” “안산에 있는 고모네 공장에서 일하세요. 집에는 할머니만 계세요.”
나는 더 이상 예쁜이에게 묻지 않았다. 자장면을 두 그릇 시켰는데 군만두 한 접시가 서비스로 딸려 나왔다. 군만두를 오물오물 먹는 예쁜이가 정말 내 딸 아녜스같이 보였다. 목안으로 넘긴 자장면이 가슴 속에서 뭉쳤다 쉬었다하면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가게에 높이 걸려있는 메뉴판을 눈에 힘을 주며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눈 깜박거리기 운동도 하고 적당히 해가며 주책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전에 미리 주의를 하였다.
“예쁜아, 네 덕에 할머니가 아주 잘 먹었다. 우리 또 만나자.”
“할머니 댁 언니한테 놀러 갈 께요. 안녕히 가세요.”
예쁜이와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 나는 매년 졸업 시즌마다 가족과 함께 자장면 한 그릇도 나누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장면을 같이 먹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두면 어떨까?
‘자장면 먹고 싶은 학생은 여기 모여라!’ 나는 오른손 검지를 높이 쳐들고 우리 집이 있는 204동 맨 위쪽 하늘을 쳐다보며 아파트 높이만큼이나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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