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칼럼
-담 배 유 감-
2006-08-25 <>
편집위원칼럼
담 배 유 감
많은 인생 선배들이 나이 들었을 때 할 일이 마땅치 않아 무료하게 지낸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생각하여 낸 것이 혼자서도 할 일을 많이 만들어야 삶의 마지막 자락이 무료하지 않겠구나 생각하였다.
우선 생각해 낸 것이 대학을 다시 한번 다녀보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한 동안 잘 벌어먹고 살았으니 이번에는 인문대학에 한번 도전해 보자. 삼수 끝에 인문대학 국사학과 편입시험에 합격하였다. 하필 국사학과를 선택하였느냐 하면 혼자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아들과 며느리하고 같은 대학을 다니느라 주변에서 놀림 아닌 놀림도 받았지만 무사히 환갑이 되던 해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사군자도 배우러 다녔고, 서울대학교 자하서당에 입학하여 서예도 배우고 있다. 때로는 만보기를 차고 혼자 걷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 말고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 중의 하나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흡연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술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즐기지만 흡연은 꼭 여럿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담배를 처음 배우게 된 시기는 대학에 들어간 직후라고 기억된다. 선배들의 강권으로 배웠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이고, 선배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다. 당시 가수 최희준의 ‘진고개 신사’라는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김진규·엄앵란 주연의 ‘진고개 신사’라는 영화의 주제곡이었다고 기억된다. 그 가사의 첫 머리가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을 …’로 시작된다. 당시 학생들은 딱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도 없으면서도, 무언가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고독한 사나이가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바바리코트 깃을 바싹 올리고, 담배 한 대를 피워물고, 가슴 속의 아픔을 태워 내뱉는 듯한 담배 연기… 당시 학생들은 60년대 초 군사혁명 하에 팽배한 차가운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우울한 낭만적인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이때부터 40여년을 담배와 벗하였으니 분명 나도 애연가이다. 일반 흡연자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처럼 담배를 피우는 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 적은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자들을 일종의 마약중독자처럼 본다. 담배를 벗하는 애연가들이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세상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인지.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이것은 담배갑에 적혀있는 얄미운 문구이다. 그래도 피울 것을 알면서. 금연 홍보비가 담배값에 포함되어 있다는 아이러니. 그렇게 해롭기만 하다는 담배 생산을 금지시키지 못하는 정부.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담배값의 60%이상이라는데 정부는 그 세금에 중독이 된 것인가. 이것들은 단지 금연을 못하는 자들의 하나의 투정일 뿐인가.
고(故) 강소천님의 ‘뭉게구름’이라는 동시가 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해바라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햇님이 없어 그럴까요?/아니어요, 비가 내리니까 얼굴이 간지러워서 그러는가 봐요./구름은 커다란 그림책입니다./구름이 그림을 그려 놓습니다./저것은 양 떼/저것은 토끼/저건 우리나라 지도/구름이 번갈아 새 그림을/자꾸 그려 놓습니다.’
이렇게 구름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grand variety show를 펼쳐 온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피우다 말고 재떨이에 놓아 둔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는 애연가 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황홀경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인자하신 얼굴도 보이고,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간 연인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하고…
몇 십 년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우리 집 마나님, “여보, 담배 좀 끊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젠장 맞을! 나도 인생 60이 지나니 레임덕(lame duck)이 오는 것인가? 북악산 밑 푸른 기와집 노인처럼. (2006. 08. 06)
(안용석 편집위원)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