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테마 _ 새해소망
-가장 큰 계획-
2010-01-26 <>
권지숙(부개3동)
12월 마지막 날 옛 사람들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목욕을 했다.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까닭이다. 나 역시 대대적인 청소와 더불어 찜질방으로 온 식구를 데려가 묵은 때를 벗겼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수첩을 꺼내들어 10대 계획을 짰다. 연말이면 늘 마음은 원대하지만 육신이 약해 이루지 못했던 계획들을 안타까이 보면서도 새해엔 꼭 10대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 중엔 아이들의 새학기 수학 선행학습도 있다. 이제 5학년이 되는 큰 애에게 ‘’이제는 학습할 시기’’임을 강조하며 요며칠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오늘 딸 아이가 “나 엄마랑 수학공부 하기 싫어. 엄마는 자세히 설명도 안 해 주면서 윽박지르기만 해!”라고 말한다. 심화도 아닌 기초를 한 번 훑고 가는거라 눈엔 쉽기만 한데, 딸 아이는 생소해서 어려웠던가 보다.. 그럼에도 한두번 설명했는데 이해를 못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높였었던가 보다.
독일의 교육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교육은 치료여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아이에게 수학이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라는 병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서 태동된 문학서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었다. 신과 인간의 능력을 부여받은 길가메쉬 왕의 권력과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런 그에게 넘지 못할 한계가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었다.
진시황이 불사약을 찾아 헤맨 것처럼 길가메쉬도 영생의 길을 찾았으나 결국 얻지 못했다. 어렵사리 얻은 불사의 약초를 부주의로 뱀에게 뺏겨 비통함를 이기지 못해 끝없이 절규하고 있는데 신이 나타난다. 바로 이슈타르 여신인데, 그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불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를 채우고 춤추고 놀며 아내와 사랑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사는 것이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이다. 그러니 헛된 영생을 위해 유한한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현재 있는 것에 자족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인류 최초 문명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현재도 모든 종교에서 권하는 행복에 이르는 삶도 결국 4천여 년 전 조상들의 권고에 다름 아니다.
문득 미래의 성공을 위해 공부해야만 한다고 아이들에게 양미간 찌푸린 나를 돌아보았다. 새해 원대한 계획의 실천을 즐겁지 않은 분위기로 이끄는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그 외 또 다른 계획들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해야 한다는 전제가 빠진 것이다. 공부를 시킴에 미래에 대한 압력으로 아이를 주눅들게 하는 방법이 아닌. 격려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방법이 틀린 것이다.
2010년도엔 가장 큰 계획하나를 확실히 실천하고자 한다. 일용할 양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할 것이다.
부부가 건강하여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할 것이다. 그래서 양미간에 주름잡지 않고 늘 춤추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것이다. 인류 역사상 불변하지 않는 그 평범한 진리를!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