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봄앓이-
2006-06-02 <>
독자수필
봄앓이
송 준 용
(부평6동·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계절에 민감한가 보다. 해마다 이맘때면 봄앓이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봄이 되어 한바탕 꽃잔치가 끝나고 나면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에 시달려왔는데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더러 있는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련은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더니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개나리, 벚꽃도 슬슬 제 자리를 물러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어서 장미, 수국도 만발할 것이지만 때맞추어 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허무가 되기도 하고 비탄(悲嘆)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특히 중년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더 할런지도 모른다.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이렇게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노래한 시인도 있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동심초>에서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낙화는 어차피 이별이고 허무고 비탄일는지도 모른다.
목련이 지던 날이었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목련은 한 잎 두 잎 꽃잎을 제 발등에 떨구더니 이윽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날 나는 사랑하던 사람을 보내고 난 다음처럼 허전하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누구를 사랑해 본 적도 없고 작별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이러지…”
나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마음을 가누지 못하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음악을 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봄의 요정(妖精)보다 독한 술잔을 비워보기도 했다.
내가 ‘봄앓이’를 하게 된 것은 지천명(知天命)의 고개를 넘기고부터였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해가면서부터 그 징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히 봄꽃 때문이 아니라 가버린 세월에 대한 허무함과 무상함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래를 꿈꾸는 자에겐 오는 것이지만 과거에 젖어 있는 사람에겐 가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젊은이의 나이는 보태지고 늙은이의 나이는 빼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엊그제 청년이던 사람이 어느 새 노인이 되었다. 엊그제 새잎이던 나뭇잎이 어느 새 단풍으로 물들었다. 엊그제 새 것이던 물건이 어느 새 고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놓는다.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아 있는 것은 물론 죽어 있는 것들까지도 변모와 변화를 거듭한다. 이 어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섭리라고만 치부해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찍이 모란의 시인 김영랑(金永郞)은 이 계절을 일컬어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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