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테마 - 비
-그 해 여름의 비
양진경(부개동)-
가물어 메말라가는 대지를 위해서 비는 축복일터이지만,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줄 바캉스 계획을 꼼짝없이 제압하는 비 소식은 도시인들에게 그렇게 달갑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멀리 섬으로 놀러갔던 지난여름의 기억이 어슴푸레한 것도 물론 “비” 때문이었습니다.
일기예보를 나 몰라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의 휴가일정 바꾸기가 쉽지 않아 오랜 기간 준비한 여름휴가계획을 강행하게 되었지요.
수 년 만에 온 가족이 해수욕도 하고 조개잡이도 하려했건만, 2박 3일 동안 끊임없이 내리는 장마 덕분에 준비해간 수영복은 몸에 걸쳐보지도 못한 채 설마하며 챙겨갔던 긴팔 옷은 필수복장이 되었답니다.
지하철에서 파는 일이천원짜리 우의를 오천원에 사입고 우산쓰고 섬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졸지에 뚜벅이 섬 탐사대가 되어도보고, 비가 좀 멈췄나 싶어 부랴부랴 아이랑 애아빠만 수영복 입혀 바다에 몸 한 번 담궈보게 했더니만 채 5분도 안되어 무섭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대피한 게 전부였지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한 평상에 앉아 싱싱한 바다고기를 먹는 대신 간신히 얻은 숙박시설 한 칸짜리 방 안에서 라면끓인 국물에 밥 말아먹던 식사시간이 그나마 낙이었고, 밤이 되면 자기 싫다는 어린 딸아이를 간신히 재운 후에야 준비해간 온 국민의 보드게임 'GO, STOP'을 외쳐가며 아쉬움을 달래려 애써보았답니다.
이래저래 옴짝달싹 못하던 섬 생활 삼일 째 아침이 되어서야 비구름이 밀려나가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금쪽같은 휴가를 홀랑 다 까먹었지만 섬을 탈출한다는 상쾌한 기분으로 뭍으로 향하는 뱃길에 올랐습니다.
그토록 그립던 뭍이 보일 무렵,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푸른 하늘에 시끄러운 매미소리를 잔뜩 머금은 뙤약볕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를 반겨 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