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와 월급통장
-제윤경의 동행 칼럼②-
2010-10-21 <>
신용카드는 후불결제 시스템이다. 소비 욕구를 채웠지만 지금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없다. 한 달 후에 결제하거나 그마저도 몇 개월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다. 신용카드의 이런 결제 편리성은 사람들에게 소비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고 이것은 값비싼 소비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편리한 욕구 충족 도구로 인해 우리의 월급날 풍경은 바뀌었다. 한달동안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미래를 즐겁게 계획하던 월급날이 혹 결제금액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속타는 시간이 되었다. 후불결제 시스템이 아니라 미리 당겨 써버리고 월급타면 갚아야 하는 가불 시스템에 갇혀 버린 것이다.
사람은 이익에는 둔감한 반면 손실에는 민감한 손실회피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결제를 미루고 욕구를 채웠지만 정작 그 돈을 결제해야 하는 다음달 월급날은 결제금을 손실로 기억하면서 심리적으로 불편해진다.
특히 할부금은 할부금을 갚는 내내 왠지 생돈을 까먹는 것 같아 소비 만족을 저하시킨다. 심리적 불편 외에도 가불결제 시스템은 경제 환경 변화와 가계의 재정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대금 결제의 쳇바퀴에 갇혀 직업을 바꾸는 것도 결정할 수 없고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는 뉴스 하나에도 공포심을 느껴야 할 처지이다. 진보의 역설의 저자 그레그 이스터 브룩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는 당신에게 행복을 사줄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불행을 사줄 수는 있다. 이를 신용카드의 복수라고 한다’ 라고 말한다. 신용카드는 자신의 재정적 통제를 위해 고도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닌가 되짚어 보아야 할 때이다.
최소한의 재정 운영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갑에서 꺼내 당장 잘라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독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