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상우회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삼산상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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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
마을전체가 30가구에 불과했던 80여 년 전부터 그 맥을 이어오며 이웃사촌의 따뜻함을 나누는 상조회가 있다. 옛날 방식의 장례의식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고인에게는 묘(산소)를 만들기도 한다는 ‘삼산 상우회’ 박찬후(삼산동.61)회장을 만났다.
년에 ‘삼산 상우회’란 정식 명칭을 만들었지만 박 회장의 양친이 생존해 계셨던 때부터 시작되었기에 80여년이 넘는 오랜 상조회다. 먹을 게 귀했던 그 당시 마을에 누군가 상을 당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의 집에 있는 계란, 보리, 쌀, 고구마, 술 등을 챙겨 초상집으로 달려갔다. 남자들은 상주의 친지들에게 부고를 알리는 일을 시작으로 마을의 묵은 나무를 베어 상여를 만들고, 빈소를 차리고 상여를 장식할 종이꽃을 만들고, 산소 자리를 파고 잔디도 캐었다. 아낙네들은 밤을 지새며 상복을 만들고, 각자 가져온 곡물로 끼니를 해결하며 장례가 끝날 때까지 합심해서 상부상조했다.
“아버님은 마을의 공동 상여를 만들고 2년째 되던 해에 돌아가는데, 지금의 미래타운 5단지 벼락바위 자리가 삼산동의 공동묘지였다. 옛 장례문화가 요즘엔 맞지 않아 내세울게 없어 무척 아쉽다. 배고픈 시절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 그 명맥을 잇기 위해 매년 정기 총회를 하면서 그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고 젊은이들에게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삼산 상우회’는 농경시대로 부터 남아있는 마지막 산 증인들이 아닐까 싶다.
김혜숙 명예기자
자료관리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