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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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어설픈 공부에도 배짱 좋게 대학시험을 보러 갔을 때 작문 시험 제목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었다. 별로 기뻐할 일이 없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교과에 배웠던 안톤 시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흉내 내어 겨우 부끄러운 답안을 낸 것을 두고두고 대학에 낙방한 것보다 더 기억하고 있다.
이제 인생의 목적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어느덧 50대, 요즘의 젊은 문화를 미쳐 못 쫓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되돌아보면 우리의(적어도 나에게는) 70년대는 정치적, 경제적 참혹함과는 또 다르게 어느 때보다 감성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 추억 중 무엇보다 내게 남는 기억 중의 하나는 영화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벤허’ ‘25시’ 등의 훌륭한 작품들을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해준 그 때 선생님들은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들이다. 요즘에도 가끔 아이들과 영화관을 가는데, 나이가 들어 감성이 메마른 탓일까 아니면 숨가쁘게 화면이 변하는 요즘 영화에 적응이 안돼서일까 가슴이 쿵쿵 뛰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예전에 그런 감동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직장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집에들르는 큰 아이는 나만큼 영화를 좋아한다. 그 때마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감성의 시대’에 내가 받았던 그런 감동들을 아들에게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지금 다시 한 번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그 것은 아들과 함께 꼭 보여주고 싶은 추억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커피향 좋은 찻집에서 ‘서기2525년’이나 폴 모리의 ‘맨발의 이사도라’를 듣는 것이리라. 부평도 많이 변했다. 옛날 영화관은 없어졌지만 공연장소도 제법 생기고 문화행사도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에는 아트센터가 개관됐다.
많은 기회와 공간이 힘들게 생겨난 만큼, 단지 바라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문화’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거나, 일방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더라도 감동이 있고, 우리들의 애환이 있고, 더불어 그를 통해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편집위원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