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곧은 화살이 나옵니다.” 색깔을 내고 곧게 하는 작업이 제일 어렵다는 화살. 50여년 넘게 화살과 씨름해 온 장인이 있다. 부평의 유일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박호준(67·산곡1동·사진) 궁시장. 본시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고 일컫기 때문에 화살만 만들고 있는 그는 엄밀히 말해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을 모두 궁시장이라 부른다.
대나무 화살 끝 오늬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다듬던 박호준 궁시장은 ‘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예전엔 나에게 생계수단이었고 지금은 나를 지켜주는 명예다”라고 답한다. 선친 박상준 옹의 대를 이은 중요무형문화재 47호 보유자로 3대를 잇는다. 현재 그의 아들 주동(38) 씨에게 전수 중이니 궁시장으로 4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산곡1동 공방에는 70년대 초까지도 화살을 구입하러 발길이 많아 문전성시를 이뤘다.
“88년 올림픽이후로 양궁이 떠오르며 국궁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급격히 일거리가 사라졌어요.” 올림픽에서도 양궁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국궁은 무형문화재로 보호를 받아야 지켜지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젠 정월대보름과 명절을 제외하면 그다지 바쁠 일도 없어졌다. 올해 대보름인 2월 21일에 도호부청사에서 인천의 8명 기능보유자들이 모여 대보름 행사를 갖고 무형문화재 작품전이 4월 중에 열릴 계획이다.
깎고, 다듬고, 말리는 6개월 과정을 거치는 국궁. 얼핏 대나무를 깎아 놓은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5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3개월 동안 음지와 양지를 번갈아 가며 건조시킨 대나무를 무게와 직경이 일정한 것을 선별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선별된 살대는 불에 구워 강도와 색깔을 내고 활줄을 끼울 오늬와 깃을 다는 일을 해야 한다. 오늬는 싸리나무로 만들며 복숭아 껍질로 감싸 화살이 터지고 습기가 엄습하는 것을 막는다.
화살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꿩 깃 작업도 만만치 않다. 꿩 한 마리로 화살 2개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 칼로 깃을 다듬어 살대에 다는 일은 10여년 이상 숙련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고난도 작업이다.
“어려서 이것만은 안하리라 마음먹기도 했는데….” 그의 선친은 활 만드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아버지 마음에 들게 활을 만든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꼭 꼬집어 가르치는 법도 없어서 한 가지 일을 익히려면 수십 번을 반복해야 겨우 터득할 수 있었다. 그땐 그것이 야속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름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에게도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안타까운 점은 오로지 화살 만드는 일만 하라고 할 수 없어 다른 직장을 갖고 있는 아들을 볼 때다.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로 보존하려면 기본적인 생계유지비는 나와야 하거든.” 현실적 어려움 속에 전통을 잃을까 염려되는 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다.
이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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