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파트 계단 청소하는 날. 201호 반장할머니는 칼국수를 끓이고, 501호 새댁은 빈대떡을 부쳤다.
한 지붕에 18세대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화목한 아파트가 있다.
부평5동 364번지에 위치한 고려2차아파트에는 이 훈(66) 반장할머니와 살림을 맡아서 하는 박상만 씨가 있다. 501호의 최현철 씨는 전기담당, 203호 임찬수 씨는 페인트 담당이다.
고려아파트의 주민들은 모든 일을 주민 스스로가 해결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여러 가지 직업과 재주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매월 1회 주민들이 옥상부터 가루비누를 1층 주차장까지 뿌리고 솔로 물청소를 합니다.
아파트 페인트칠도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서로 서로 도우며 칠을 했습니다. 옥상에 있는 물탱크 청소도 우리 손으로 해결합니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에서 우리를 보고 극성스럽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우리를 부러워하지요.” 반장할머니는 인심 좋은 환한 웃음을 짓는다.
반장할머니가 옥상에 여러 가지 채소를 기르고 주민들은 모두 자신의 텃밭처럼 물도 주면서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매월 1만원씩 내는 회비를 가지고 알뜰살뜰 인건비를 안들이고 최소의 재료비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주민들은 1년에 2번은 텃밭에서 고추와 상추 등을 뽑아서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201호 반장할머니는 고려아파트에 사는 18세대 주민 모두의 엄마다. 항상 문이 열려 있는 201호는 주민들이 오가며 들르는 간이역이다. 사람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면 누구나 문을 여는 간이역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위층 아래층 나눠 먹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계단 통로에는 빈대떡 냄새가 진동한다. 201호 할아버지는 101호의 8개월 된 예원이와 매일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예원이도 아침이면 할아버지를 찾아 1시간씩 간이역에서 놀다간다.
'하루를 살더라도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501호 최현철 씨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 이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1층 게시판 밑에는 파란 통이 놓여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벽에 붙은 스티커나 광고지를 주민 모두가 보이는대로 떼어서 파란 통에 버린다. 아파트의 벽은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깨끗하고 계단 또한 찌든 때가 보이지 않는다.
공동주택이 이처럼 깨끗할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우선 연세가 있으신 분이 주축이 되어 모범을 보이니까 젊은 사람들은 따라가게 됩니다. 반장님이 인심 좋은 엄마처럼 모든 사람을 아우르며 챙기니까 아파트 청소하는 날이면 외출을 삼가든지 나갔다가도 부지런히 돌아오지요”라고 말하는 박상만 씨.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양보하고 챙겨주고 잘못을 지적하면 바로바로 시정하는 모습이 공동주택에서 좀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물질만능주의에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회. 핵가족화로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 지붕에 18세대가 한 가족처럼 인심과 사랑을 나누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려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의 모습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고 남이 먼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라기 보다는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면 고려아파트에 넘쳐나는 훈훈한 정을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명옥 기자
smo@icbp.go.kr